신세계그룹 총수 일가가 2006년에 이어 또다시 거액의 차명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적발됐다. 금융실명제법이 시행된 지 23년이 지난 지금도 버젓이 차명주식을 숨겨온 무신경이 놀랍다. 언론과 야당의 잇단 문제제기에도 극구 부인하더니 사실로 밝혀지자 뒤늦게 ‘관행’ 운운하며 변명으로 일관하는 뻔뻔함과 도덕적 해이에는 말문이 막힌다.
신세계는 최근 신세계(백화점)·이마트·신세계푸드 등에 전·현직 임원 명의로 돼 있던 주식 37만9733주를 이명희 회장 명의로 실명 전환한다고 공시했다. 시가로 830억원대에 달하는 규모다. 신세계 측은 해당 주식에 대해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 “경영권 방어 차원으로 탈세나 불법 비자금과는 무관하다” “더 이상 차명주식은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다. 동시에 “세무조사 과정에서 확인돼 실명 전환키로 했으며 세금이 부과되면 완납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쯤 되면 신세계가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나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2006년 8000억원어치의 차명주식이 밝혀져 증여세 3500억원을 추징받은 상황에서 또다시 차명주식이 드러났다는 것은 의도적이고 상습적인 행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당장 이 주식이 선대회장이 남긴 것인지, 아니면 2006년 이후 새로 만들어진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신세계 해명대로라면 왜 9년 전 해당 주식을 실명 전환하지 않았는지 보다 분명한 설명이 필요하다. 증여세 공소시효 15년을 겨냥해 의도적으로 감춰뒀다거나 아니면 2006년 이후 새롭게 만든 차명주식일 것이라는 의구심이 세간에 증폭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차명주식 배당금이 누구에게 들어갔는지도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차명주식 문제는 일감 몰아주기, 경영성과에 역행하는 보수 등과 함께 재벌가가 안고 있는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상징하는 사안이다. 조세포탈이나 비자금과 동일시되고 있어 해당 기업은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를 감안하면 신세계의 이번 차명주식 문제는 대충 얼버무려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실질 경영자인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나서 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게 마땅하다. 정부의 명확하고도 엄정한 사실관계 조사와 공정한 법 집행도 뒤따라야 한다. 지난해 개정된 금융실명제법에는 ‘실명이 확인된 계좌에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은 명의자 소유로 추정’토록 되어 있다. 차명주식을 통한 금융거래가 있었고, 목적이 탈법행위라면 실소유자 및 명의 대여자까지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금융당국이 주요 주주 보고 등 공시 위반 여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병행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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