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경제 이야기]무더위를 이기는 법, ‘실링팬’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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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우석훈의 생태경제 이야기

[생태경제 이야기]무더위를 이기는 법, ‘실링팬’의 재발견

by eKHonomy 2014. 6. 5.

공직을 사퇴하면서 하던 일을 다 내려놓았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여전히 기억에 아른거리는 일이 하나 있다. 도시가스나 지역난방을 통해 냉방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정책도 내가 하던 일 중 하나였다. 도시가스로 냉방을 하면 전기는 최소로 쓰면서 훨씬 저렴해지고, 국가적으로도 전기 부하를 줄일 수 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지역난방을 지역냉난방으로 바꾼다면, 전기는 물론 에너지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장기적인 온난화 현상을 생각한다면, 그냥 더위를 참으라고 할 일이 아니라, 보다 효율적이면서도 저렴한 대체수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생각이었다. 초기 제품은 고가이겠지만 기술이 안정화되면 결국에는 전기 에어컨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냉방기술은 오히려 더 고가이면서도 전기를 많이 쓰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시스템 냉난방, 미국을 제외하고 개인들도 이런 식으로 냉방체계를 만드는 나라가 있는지 모를 정도로, 정말 이상한 방식으로 왔다. 더워도 무조건 참자, 이것도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전기를 잔뜩 쓰면 해결된다, 이것도 이상하다. 원자력 발전의 위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 냉방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내가 사는 집의 냉방방식을 결정할 순간이 되면서, 나도 이 고민을 했다. 건축업자는 시스템 에어컨 쪽을 권유했다. 돈은 더 들어도, 나중에 집의 경제적 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나는 집을 팔 생각이 없으니까, 그 얘기는 안 들었지만, 아기 키우면서 더운 걸 무조건 버틸 수도 없으니 진지하게 대안을 고민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천장형 선풍기라고 번역할 수 있는 실링팬이었다. 방마다 실링팬을 달았다. 전기라고 해봐야 선풍기 미만이라서 에어컨 전기료에 비할 바는 아니다. 에어컨 냉방비와 비교하면 한 달 안에 설치비용은 전부 빠진다. 문제는 과연 이게 한국의 무더위에 효과가 있겠느냐는 것 아니겠는가?

실링팬은 대류 방식이라 일반 선풍기와는 작동원리가 다르다.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데, 위에서 이걸 흔들어서 대류를 만드니까 바람이 생겨난다. 실제 사용해보니까, 창문을 열지 않은 상태에서는 큰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창문이 열려 있고, 특히 두 개가 열려 있으면 정말 시원하다. 아주 더운 날을 제외하면 충분하다. 그래도 아기가 자는 방에는 예전에 쓰던 에어컨을 달았는데, 작년에는 딱 하루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을 켜는 경우에도 실링팬을 같이 쓰면 효과가 더 커진다. 요즘 실링팬은 회전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데, 역방향으로 하면 겨울철 난방에도 보조효과가 생긴다. 더워진 바람을 밑으로 내리면 난방 보조기구가 된다.



문제는, 이게 집주인들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월세, 전세 사는 사람들은 혼자 결정할 수가 없다. 집주인과 잘 상의하면 집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니까 적당히 비용을 배분하면서 설치할 길이 있겠지만, 현실에서 그게 쉽겠는가?

정부와 지자체에서 천장형 선풍기 설치를 권장하고, 주인과의 마찰 같은 것을 정부 권고안으로 해결해주면 좋을 듯싶다. 약간이라도 보조금을 주면 더욱 고맙겠고. 무더위 때 전기부하 피크 관리, 내가 보기에는 실링팬 보급이 딱 답이다. 에어컨 업체를 제외한 모두에게 이익이다.


우석훈 |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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