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창]눈 감고 경제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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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시대의 창]눈 감고 경제 살리기

by eKHonomy 2016. 1. 21.

지난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재계가 주동하는 ‘민생 구하기 입법촉구 1000만 서명운동’에 참가했다. 대통령이 길거리 서명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서명은 석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여당을 돕는 행동이므로 공무원의 중립 의무 위반일 가능성이 높고, 심지어 탄핵감이란 주장도 나온다.

그런데도 총리와 장관들이 줄줄이 서명에 동참하고 있다. 서명 안 했다가는 진실성을 의심받을지 모르니까. 몇 달 전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청년희망펀드’에 대통령이 1호로 가입하자 장관, 여당 시장, 도지사들이 뒤질세라 가입하던 풍경과 흡사하다. 이는 너무나 유치한 발상이라 해외 토픽 뉴스감이다. 펀드에 돈을 모아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진다면 그것 못할 나라가 어디에 있으며, 청년실업 문제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대통령 서명이나 펀드나, 상식을 가진 사람은 그런 발상을 할 수가 없다. 양심이 있는 참모라면 이러면 안 된다고 대통령을 말려야 한다. 대통령이 어느 날 창의적 발상을 하고, 의논 없이 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그 밑의 참모와 여당은 대통령한테 바른말을 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장관들의 대면보고를 받지 않으니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여당 지도부와도 의논, 소통 없이 구중궁궐에 앉아 계신다. 이러니 국정이 표류하는 것 아닌가.

작년인가 대통령이 TV 중계에 나와서 뭔가를 설명하고는 기자들과 문답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았는데,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받지 않는 데 대한 질문이 나왔다. 대통령이 답하면서 뒤에 앉아 있는 참모들을 돌아보더니 “대면보고 필요하세요?”라고 묻는 게 아닌가. 대통령이 장관의 대면보고를 안 받는다는 소문이 있더니 사실이구나 하는 걸 확인하는 자리였다.

도대체 대면보고 없이 어떻게 복잡한 국정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지구상에 장관의 대면보고를 받지 않는 대통령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이 이론과 철학이 없으니 국정의 방향이 서지 않는다. 진실하지 않은 사람을 수시로 다그치고, 국정 표류 책임을 국회에 돌리고, 참모들은 대통령 눈치만 볼 뿐 입을 다물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의 즉흥적 발상대로 그냥 이리저리 흘러가는 정부다. 이렇게 무능하고 비겁한 정부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이 눈 감고 술래잡기하는 놀이가 있다. 술래는 수건으로 눈을 가려 놓았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방향을 알 수가 없고, 그냥 허공에다가 마구잡이로 손을 휘두를 뿐이다. 혹시 손끝에 누군가 걸려들 것을 희망하면서. 지금 박근혜 정부가 하는 정책을 보면 아무런 비전도 철학도 없이 즉흥적으로 무조건 경제 살리기 한다고 손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 방향 설정이 없으니 성공할 확률은 제로다. 보여주기는 보여주기로 끝날 뿐이다. 몇 년 뒤 청년희망펀드의 재원 조달과 용처의 적법성을 놓고 국정조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왜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안 받는지 나는 그게 매우 궁금한데, 어느 민완기자가 좀 캐주면 좋겠다.

민생 구하기 입법의 내용은 경제활성화법과 노동입법인데, 하나같이 논란거리다. 법안의 종류가 많아 일일이 논할 지면은 없으나 경제 살리기와 거리가 멀고 부작용이 우려되는 게 많다. 예를 들면 영리병원의 도입, 귀족 국제학교 설립, 재벌들의 문어발 확장 도와주기, 부동산 투기 조장 종합판 이런 것들이다. 게다가 파견법을 바꾸어 파견을 더 쉽게, 더 널리 하겠다고 하니 이미 비정규직 세계 1위인 한국을 더욱 지옥으로 몰아넣겠단 말인가. 이런 입법이 민생 살리기, 경제활성화라는 탈을 쓰고 등장하니 표리부동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는 민생과 아무런 관련도 없고, 정확히 말하자면 재벌 살리기, 경제 망치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역사에서 재벌 편이었던 하딩, 쿨리지, 후버가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고, 재벌과 맞싸웠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최고 대통령이란 사실을 새겨보기 바란다. 부자, 재벌 편들었던 레이건, 부시(아버지와 아들)가 결국 경제를 망쳤고 지금도 진행 중인 경제위기의 주범이란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정부가 진정 민생과 경제를 염려한다면 답은 대통령 아주 가까이 있다.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공약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그것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오리무중이고, 김종인 위원장은 야당으로 옮겼다. “증세 없는 복지”를 한다더니 “복지 없는 서민 증세”만 열심히 하고 있다.

한때 보수 쪽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가리켜 ‘잃어버린 10년’이라 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난맥상을 보면 그 정도 수식어로는 부족할 듯싶다. ‘악몽의 10년’이 되지 않을까. 나는 그게 두렵다.


이정우 |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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