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기요금 누진제와 에너지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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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시론]전기요금 누진제와 에너지복지

by eKHonomy 2012. 9. 9.

조영탁 | 한밭대 교수·경제학


올여름은 짜증이 날 정도로 무더웠다. 그 폭염에 견디다 못해 에어컨을 자주 튼 가정은 지금 조마조마한 심정일 것이다. 이제 곧 열대야로 잠을 설쳤던 8월의 전기요금 고지서가 날아들기 때문이다. 무더위가 한 달의 시차를 두고 서늘함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가정용 전기요금은 사용량이 많아지면 요금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누진제다. 1970년대 석유파동에 대응하여 산업체의 생산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가정용 전기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여기에 당시 국민소득 1000달러 상황에서 전력소비가 많은 상위계층이 더 많은 요금을 부담하는 분배 목적까지 가미되었다. 가정용 요금의 누진 폭과 단계가 과도하게 확대된 이유다. 


 누진제 자체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시대가 달라져도 전기 절약이나 저소득층 배려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정도와 방식이다. 현행 요금체계에서 최고 6단계(500kwh 이상)에 적용되는 요금은 최저 1단계(100kwh 이하)에 적용되는 요금의 11.7배이다. 외국의 2~3배 차이에 비해 너무 과도하고, 제도의 좋은 취지에 어울리지 않게 거의 징벌 수준이다. 여름철이면 가정용 전기요금이 폭탄이 되는 이유다. 누진제의 취지는 유지하되 그 부작용을 축소하기 위해 요금의 증가폭과 단계를 다소 줄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대략 3가지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전기요금 인상안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첫째, 가전제품이나 전자기기의 보급 증가로 가구당 월평균 전력소비는 이전보다 크게 증가하였다. 월평균 200kwh 이상을 사용하는 가구가 전체 가구의 63%이고, 누진제로 부담이 가중되는 월 300~400kwh를 소비하는 가구는 그 절반인 30%다. 현재의 누진체계가 과거 전력소비 수준에 맞추어진 탓에 이들 계층은 에어컨을 조금이라도 가동하면 요금폭탄을 맞게 되어 있다.


둘째, 절전이라는 취지로 가정용에 지나친 부담을 지우는 것도 문제다. 절전에 관한 한 우리나라 가정은 모범생이다. 우리나라 가정의 1인당 전기소비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고, 전체 전력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OECD 평균의 절반인 15%에 불과하다. 절약이라면 오히려 전체 소비의 55%를 차지하면서 최근 소비가 급증하고 있는 산업용 전기가 문제다


셋째, 물론 누진제 완화가 전력소비가 적은 하위계층의 요금부담을 증가시키는 문제점은 있다. 하지만 최근 가구형태의 변화로 전기소비가 적은 가구와 저소득층 가구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기초생활수급자라도 월 평균 200kwh 이상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이보다 전력소비가 낮은 가구 중에는 경제적 부담 능력이 있는 1인가구가 많다. 이 경우 누진제로 소득이 높은 1인가구가 오히려 요금보조를 받는 셈이다. 물론 전력소비가 적은 저소득층 가구도 여전히 있다. 누진제 완화에 따른 이들 가구의 부담증가는 직접 보조를 확대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혜택도 크지 않고 수혜 대상도 불분명해진 누진요금제보다 차제에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부응하는 확실한 에너지복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21세기 한국은 더 이상 국민소득 1000달러 수준, 산업을 위해 가정의 절전이 강조되는 개발연대가 아니다. 소득 2만달러와 복지국가 시대에 절전도 중요하지만 대다수 국민의 무더위는 식히고 저소득층의 마음은 따뜻하게 해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 도대체 언제까지 견디기 힘든 무더위에 값비싼 에어컨을 인테리어 장식품으로 사용해야 하는가? 또 언제까지 변변한 에너지복지제도 없이 고유가로 힘들어 하는 저소득층의 고충에 애매한 누진제 혜택만 내세울 것인가? 우리를 진짜 답답하고 짜증나게 하는 것은 여름철 무더위가 아니라 오랜 기간 요금폭탄과 에너지복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정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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