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기존의 검정화 방식에서 국정화로 전환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국정 한국사 교과서 집필에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 분야 전문가도 참여시키겠다고 한다. 필자가 경제사 전공은 아니지만 경제학적인 시각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의 기본가치로 하고 자유 시장경제체제를 경제운용의 기본틀로 하고 있다. 시장경제체제는 시장의 소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체제로서 정부가 자원배분을 주도하는 계획경제체제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은 이미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그런데 시장실패가 발생하여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소위 공공재, 외부효과, 불완전 경쟁, 정보의 비대칭성 등이 존재하는 경우이다.
현행의 검인정 제도는 누구나 자유롭게 한국사 교과서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검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므로 정부가 나서서 교과서 시장에 개입하는 형태, 즉 시장실패를 나름 교정하고 있는 형태이다. 이는 교육 자체가 공공재적 특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부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그동안 해온 제한적 시장개입을 이제 정부 독점적인 방식으로 운용하겠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정권의 이념에 부합되는 내용만이 독점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친일·독재 미화 등 정부의 입맛에 맞는 역사 왜곡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국정화를 반대하는 측의 주장이 그것이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정권의 입맛에 맞는 또 다른 역사 왜곡도 있을 수 있다. 즉 시장실패를 막으려다 정부실패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정부 주장대로 지금까지 정부의 검인정을 받아 사용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들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와 이념적 편향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내용이 많다면 그동안 정부가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검인정 제도에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검인정 제도를 보완·개선하고, 정부가 이를 제대로 집행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면 될 것이다. 이로써도 충분하지 못하면 한국사 교과서 시장에 정부가 주도한 소위 ‘국정’ 교과서를 추가로 진입시키면 된다. 즉 현재의 검인정 제도의 기본틀은 유지하되 국사편찬위원회가 주도하는 새로운 한국사 교과서를 추가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기존의 검인정 교과서들과 정부의 ‘국정’ 교과서가 서로 경쟁하면서 학교에서 선택을 받도록 하면 된다. 이로써 한국사 교과서 시장의 불완전 경쟁 상태를 보다 경쟁적 상태로 유도하면 된다.
그런데 시장의 실패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기인하기도 한다. 따라서 정부는 모든 한국사 교과서들의 내용을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가칭 ‘한국사 비교 포털’을 인터넷상에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일반인들까지 그 내용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념 편향적이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이상의 세 가지 정책, 즉 현재의 검인정 제도 강화, ‘국정’ 교과서와 기존 검인정 교과서의 공존, 정보 공유 등의 제도를 시행하게 되면, 기존의 한국사 교과서들에 있을 수도 있는 이념의 편향성(시장실패)이 완화되고, 정부가 주도하는 ‘국정’ 교과서의 역사 왜곡(정부실패)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양쪽의 주장을 모두 포용함으로써 작금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를 두 쪽 낼 것 같은 지금의 한국사 논쟁에는 검인정 제도의 유지와 국정화, 이 두 가지 선택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사회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최선의 가치를 창출해 내는 제도이다. 여기서 민주적 절차란 다수결만이 아니라 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는 것임을 상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현훈 |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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