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시스템이 사라졌다는 한탄이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이 규제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시스템은 규제다. 그리고 시스템이 무너진 것은 지난 몇 십년에 걸쳐 착실하게 누적되어 온 과도한 규제 철폐와 완화의 결과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은 대략 표준 정규 분포 곡선의 모습을 띠게 되어 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의 행동과 벌어지는 사건들은 비슷한 패턴을 가지게 되어 있고 또 대략 일정하게 수렴하는 규범 혹은 표준적인 모습이 있게 마련이다. 현대 사회의 모든 과정은 무수히 많은 다른 과정과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모든 과정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행동과 사건들이 모두 이렇게 일정한 범위 안에 수렴한다는 것을 전제로 결합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를 황당하다시피 크게 벗어나는 사람들의 행동 또는 사건의 결과도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표준 정규 분포 곡선의 양쪽 ‘꼬리’에 해당하는 행동과 사건들이 나타날 경우 그와 연관된 다른 사회적 과정과 원활히 연결되지 못하게 되며, 이러한 기능부전이 누적되고 중첩되면 큰 사고가 생길 수 있다. 시스템이란 바로 이러한 ‘꼬리’를 잘라내기 위해 사회가 마련한 각종 장치들로 이루어지며, 그 중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가 인간들의 행동과 벌어지는 사건들을 일정한 범위 안으로 묶어두기 위해 직접 개입하는 장치 즉 규제이다.
‘규제혁파’서 ‘노란리본’으로 바뀐 새누리 최고위원회의 (출처 : 경향DB)
일상적인 상황에서 보자면, 규제는 갑갑하고 무의미한 족쇄로 보일 수 있다.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도 않은 상황을 상정하여 괜한 제약을 가하는 것으로 느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로 인해 가로막힌 저 너머에 아주 구체적인 이윤의 기회가 보인다면 규제는 그야말로 ‘암덩어리’로 보일 수밖에 없다. 세월호 사건의 원인 규명은 아직 기다려 보아야 하겠으나, 선령이 오래된 배를 그것도 무리하게 증축한 것이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선박 수명에 대한 실로 과감한 규제 완화가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배의 안전성에 치명적일 증축에 관련된 규제들도 무시된 셈이다.
대형 여객선을 운영하는 승조원들의 고용 구조를 보면 놀랍다. 도대체 정규직이라 할 이가 있는지 의심스러우며, 선장조차 촉탁직에 월급여가 3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 밖에 안전과 관리를 둘러싼 규제와 검사의 환경에 대해 들려오는 이야기는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일단 사고가 난 뒤의 ‘시스템 부재’에 대해서는 이미 무수히 지적이 됐다.
한 두 개의 규제가 없어지고 그 결과 한 두 군데에서 ‘꼬리’에 해당하는 일들이 벌어진다고 바로 대형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와 연결된 다른 과정에서 규제가 버텨주기 때문이며, 이것이 우리가 바로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모든 곳에서 규제를 철폐하고 개개인들이 맹목적으로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새로운 ‘규범’이 되어 버리면 이 ‘꼬리’의 행동 및 사건들이 도처에서 생겨나게 되며, 이것들이 중첩되면 마침내 보통 상상하기 힘든 거대한 재난 즉 ‘퍼펙트 스톰’이 되고 마는 것이다.
현존하는 모든 규제 장치를 깡그리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산업사회는 역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어떤 규제 장치이든 순식간에 실정에 맞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릴 수 있다. 건강한 시스템이라면 이렇게 낡아 버린 규제들을 끊임없이 솎아내어 없애고 실정에 맞는 것으로 업데이트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규제를 ‘암덩어리’로 보고 지속적으로 파괴하고 없애버리는 일만을 반복한다면 그야말로 면역 시스템 전체가 무너지면서 진짜 암덩어리가 온몸에 창궐하게 될 것이며, 그 흉측한 모습은 이번 사건의 전체 과정을 그 인과 관계의 사슬 하나하나를 촘촘히 따라가 보면 잘 보일 것이다. 시스템이란 곧 규제이다. 피할 수 있었던, 막을 수 있었던 그 너무나 억울한 죽음들을 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그러고도 이를 배우지 못한다면 언젠가 이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날이 올 수 있다.
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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