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밉다고 늑대를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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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의 경제시평

여우가 밉다고 늑대를 부를까

by eKHonomy 2011. 5. 11.
김상조 | 한성대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


기가 막힌다. 부산저축은행그룹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필자가 20여년간 화폐금융론 분야의 연구자로 살아왔지만, 이런 황당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총자산 10조원, 총여신 7조원으로 업계 1위에 올라 있는 회사가 어떻게 법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대주주 관련 대출을 5조3000억원이나 일으킬 수 있고, 어떻게 감독당국이 이를 까맣게 모를 수 있는가.


이는 검사를 나간 금감원 직원이 아예 장부를 열어보지도 않았음을 뜻한다. 낙하산 감사로 내려간 선배들의 로비에 포획당해 눈을 감았다는 것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금감원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말이 없다. 통렬하게 반성하고 근본적으로 쇄신해야 한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될 사실이 있다. 우리나라 금융감독 시스템이 금감원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좁게 보더라도 감독 관련 의사결정을 하는 관료 조직의 금융위와 실무 집행을 담당하는 민간 조직의 금감원으로 이층구조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넓게 보면 기획재정부, 예금보험공사, 캠코, 한국은행 등 다양한 기관이 권한과 책임을 나누어 맡고 있다. 따라서 작금의 사태에 대해 금감원에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금감원만 때려잡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다.

‘부산저축’ 금감원(여우)만 잘못?

그런데 최근 돌아가는 모양새가 ‘묘하다.’ 금감원이 입도 뻥긋할 수 없게 된 상황을 틈타 금융위가 주도권을 쥐고 자신의 숙원사업을 밀어붙이는 또 다른 형태의 조직이기주의가 너무나 선명하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 최종 귀착지는 금융위-금감원이라는 현행 이층구조의 감독기구를 금융감독청이라는 단일 관료 조직으로 통일하는 것이다.

금융위 모피아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불신에서 나온 편견이라고 하지 마시라. 과거 경험에서 우러나온 근거 있는 판단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목전에 닥친 상황에서도, 2000년 정현준·진승현 게이트 등 금감원 임직원이 연루된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도, 그리고 2004년 카드대란의 사후처리 과정에서도 모피아는 예외 없이 금융감독기구를 접수하기 위한 공작을 진행했었다. 금감원이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된 지금과 같은 호기를 그냥 흘려보낼 금융위가 아니다.

물론 금융감독기구의 조직 형태는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처럼 관료기구 형태로 조직된 나라도 많다. 그러나 우리의 특수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금융감독 권한을 여타의 정치적·정책적 목적을 위해 오남용하는 관치금융이 판을 치는 우리의 현실에서 금융감독 권한을 관료 조직에 일임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여우(금감원)가 밉다고 늑대(금융위)를 불러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관치금융의 폐해에 대한 판단에도 근거가 있다. 특히 2008년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금융감독 기능(브레이크)과 금융정책 기능(액셀러레이터)을 합친 금융위를 탄생시킨 것이 작금의 저축은행 부실을 낳은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건설회사↔PF대출↔저축은행의 부실이 악순환하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 오히려 구제금융을 제공하며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관치를 한 것이 바로 금융위 모피아다. 김석동 현 금융위원장의 저축은행 대책도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관치의 반복이다.

감독과 정책을 합친 현재의 금융위 조직은 ‘작은 정부’의 기치 아래 정부부처 숫자 줄이기에만 몰두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 등 행정학자들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 문제를 ‘효율적 행정’이라는 관료적 기준으로 판단한 것의 참담한 결과를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 모피아(늑대)부터 쇄신을

금감원 쇄신을 위해 금감원을 배제한 민관 TF팀을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했다. 좋다. 그렇다면, 금융감독 시스템의 재편을 위해서는 금융위 모피아를 배제해야 한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관계, 평상시 감독기구(금융위, 금감원)와 위기관리기구(예보, 캠코)의 관계, 미시건전성 감독기구(금융위, 금감원)와 거시건전성 감독기구(한은, 재정부)의 관계 등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는 하나의 정답을 찾기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 모든 논의가 모피아의 조직이기주의에 의해 왜곡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금융위부터 쇄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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