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자산가들이 생전에 자녀나 손주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증여가 늘고 있다. 국세청 국세통계 자료를 보면 지난해 증여세 신고세액은 2조3628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25.8% 증가했다. 증여가 늘어나는 것은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미리 증여해 세부담을 줄이겠다고 판단한 사람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상속·증여 세율은 같지만 납세자 입장에서는 상속세에 비해 증여세 부담이 훨씬 적다. 예컨대 50억원 자산가가 사망하면 상속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상속세는 최고세율 50%를 적용한다. 반면 증여세는 수증자 기준이어서 자녀 5명에게 10억원씩 물려준다면 각각 10억원에 대한 30%로 세율이 낮아진다.
주식시장에서도 미성년자에 대한 증여가 활발하다. 1억원 이상 주식을 보유한 만 12세 이하 어린이만 120여명에 이른다. 어린이 최고 주식부자는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2003년생 손자이다. 장손으로 알려진 그 어린이가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은 62만7244주이다. 어제 종가 13만6000원 기준 평가액이 853억원이다. 올해 배당으로만 3억원 넘게 받았다. 임 회장의 다른 손자 6명도 똑같이 833억원어치 주식을 갖고 있고, 만 3세 손자도 2억원대 주식부자다.
더불어민주당이 연령대별로 증여세율을 차등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세법개정안을 내놨다. 나이가 적을수록 증여의 혜택이 큰 만큼 저연령의 세율을 높이자는 것이다. 하지만 임 회장 장손 사례에는 증여 차등과세를 소급 적용하더라도 세금을 더 걷을 수 없다. 임 회장 장손은 2005년 주식 500주를 처음 증여받았다. 당시 최고가는 2만5000원이었고, 자녀에게 5000만원까지는 증여세가 면제되니 세금 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후 10여년간 유·무상 신주취득, 주식분할 등을 통해 주식이 급격히 불어났다.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는 재산 777억달러를 대부분 사회에 환원하고, 세 자녀에게는 1000만달러(약 111억원)씩만 물려주기로 했다. 4·5위 부자 워런 버핏과 마크 저커버그도 재산 99%를 기부하기로 했다. 저커버그는 지난해 첫딸을 낳은 뒤 기부 의사를 밝히며 “더 나은 세상에서 네가 자라기를 바란다”고 했다.
안호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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