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치킨런과 뱅크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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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여적]치킨런과 뱅크런

by eKHonomy 2015. 6. 30.

<치킨런>은 닭들이 양계장을 탈출하는 내용을 다룬 만화영화다. ‘뱅크런’은 예금자들이 은행을 탈출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은행을 빠져나오기 위해 은행으로 달려가 예금을 빼내와야 하는 것이 다르다. 채무 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놓인 그리스에 뱅크런이 빚어졌다. 그리스 정부는 오는 6일까지 은행의 일반업무를 정지시켰다. 그리스가 대외채무를 갚지 못할 것 같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예금자들이 일제히 은행으로 달려갔기 때문이다. 은행이 예금자에게 돌려줄 준비금이 바닥나면 중앙은행에 손을 벌려야 한다. 그런데 중앙은행도 형편이 넉넉지 못하다. 뱅크런을 방치하면 은행은 파산하게 되고, 그 은행과 관계를 맺고 있는 금융기관도 연쇄적으로 손실을 입는다.

뱅크런 사태를 겪고 있는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_경향DB


뱅크런의 기원은 1600년대 영국 찰스1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 세공업자인 골드스미스가 약속어음을 대량 발행한 뒤 일시에 상환요구를 받자 파산한 게 시초였다. 골드스미스는 현재의 은행, 약속어음은 예금, 일시 상환요구는 뱅크런으로 볼 수 있다. 1907년 미국의 니커보커 신탁회사 사태는 현대판 뱅크런의 대표 사례이다. 니커보커사가 발행한 수표를 은행들이 거절하자 니커보커의 예금자들이 예금을 돌려달라며 일시에 몰려들었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때는 연쇄적인 뱅크런으로 은행 1만개가 사라졌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던 1997년 종금사 연쇄부도로 뱅크런이 있었다. 70년 전 일본이 패전해 한국에서 철수하기 직전에도 일본인들이 은행에서 예금을 앞다퉈 빼가던 뱅크런이 발생했다. 미군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이었다. 일본인이 장악한 은행들은 뱅크런에 직면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예금자는 은행이 내 돈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이자까지 붙여준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은행은 돈 거래에 안전한 곳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 건물을 대리석으로 치장하기도 한다. 뱅크런은 은행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들 때, 치킨런은 양계장에 계속 남아 있으면 식탁에 오를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은행에 돈이 계속 묶여 있다고 목숨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뱅크런이 일어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생명이라서 그런 모양이다.

안호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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