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한국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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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의 경제시평

일본에서 한국을 보다

by eKHonomy 2018. 9. 18.

지난 1주일 일본에 출장을 다녀왔다. 세계적 창조도시 모델 중 하나인 가나자와시, 주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낸 요코하마 모델, 그리고 ‘콤팩트도시’로 유명한 도야마시를 둘러보았다. ‘창의도시’와 행복도시를 선언할 만큼 문화를 중시하는 한 지방도시의 사회적경제 발전 전략을 짜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재작년 여름, 처음 만난 그 시장은 쇠퇴하는 지방도시를 문화로 살려내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그는 특히 도시재생사업이 부동산거품으로 끝나지 않도록 도심의 건축 고도제한을 했고 전국 유일의 사회적경제국을 만들 정도로 아래서부터 경제를 일으키는 데 지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고즈넉한 아름다움에 싸인 도야마와 가나자와시에서는 한국어로 된 자료를 내놓았다. 한국에서 2주에 한번꼴로 온단다. 그래서일까. 현 국토부와 지방정부의 도시재생전략에는 이들 도시의 성공 사례가 이미 반영되어 있다. 예컨대 가나자와의 시민예술촌이나 요코하마의 세관창고 개조는 청주의 옛 방직공장터 등 곳곳에서 재현되고 있으며, 퇴락한 도심의 유락 지구에 예술을 접목하려는 노력은 요코하마의 고가네조 사례도 참조했을 것이다.

 

정부의 9·13 부동산대책 발표 후 첫 주말인 16일 오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시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이번 출장에서 나는 일본과 한국이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따라서 이 모델들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려면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대책을 먼저 수립해야 하며 그것이 정책의 핵심을 차지해야 한다. 물론 한국이 앞서가는 분야도 있다. 예컨대 일본의 공무원들은 정책 수립에 주민이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거듭되는 질문에 “시장이 설명회는 여러번 했다”는 정도가 고작이었고 오히려 우리에게 한국은 “주민참여”를 어떻게 하는지를 물었다. 도시재생이라는 개발사업이 빚어낼 부작용에 그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예컨대 가나자와시는 신칸센을 유치하면서 대규모 역사를 신축하고 신시가지를 개발하는 사업(정부 예산만 약 2000억원이 투입)을 시행했는데 한국이라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급기야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벌어졌을 것이다. “글쎄 몇 명은 돈 좀 벌었겠지.” 공무원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한 대답이다. 도야마시는 26년간 연속 하락하던 부동산 가격이 최근 4년 평균 0.2%씩 증가한다며 희희낙락이다. 

 

과연 비결은 뭘까? 일단 1990년대 초의 버블과 이후 ‘잃어버린 20년’이 끼친 영향이 압도적일 것이다. 대대적이고 지속적인 파산의 경험이 남아 있는 한 기업이나 중산층 이상이 쉽사리 투기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또 하나, 확인해야 할 것은 일본 조세제도의 효과이다. 도야마의 2018년 예산 약 727억엔 중 부동산 관련 세금으로 보이는 ‘고정자산세’와 ‘도시계획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1.7%와 5.4%로 세입의 절반에 육박했다(법인세에 해당할 사업소세는 4.9%). 하도 신기해서 고정자산 세율을 물어봤더니 다른 과에 물어보러 갔다온 그의 대답은 1.4%(명목세율)였다.

 

우리가 일본에 있는 동안 한국 정부는 9·13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아직 꼼꼼히 점검하지 못했지만 부동산 세제에 관한 한 13년 전 참여정부의 보유세 실효세율(부동산 총액 대비 보유세의 비율) 인상 계획에도 못 미친다는 건 분명하다. 당시 계획대로라면 금년의 실효세율은 1%에 달했을 테지만 현재의 실효세율은 0.16%에 불과하다. 종부세 최고 명목세율이 3%를 넘는다며 최강 정책인 듯 발표한 이번 대책이 실행된다 해도 실효세율은 0.2%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일본의 실효세율은 0.5%가 넘고 캐나다나 미국은 0.9% 부근이다.

 

지난 50년간의 부동산 정책으로 우리 국민 절반가량이 잠재적 투기꾼이 되었고 나머지는 희생양이 되었다. 투기의 정의가 모호하다고? 시장의 힘이 자원을 가장 필요한 곳으로 배분하지 못하는 경우를 투기라고 정의하면 어떨까? 현재 부동산 자원은 그저 돈이 남아도는 사람에게 배분되고 있다. 오로지 시세의 차이가 매매의 목적이라면 그게 투기가 아닌가? 그 부동산이 가장 생산적으로 쓰인다는 어떤 보장도 없고(돈이 돈을 버는 매개일 뿐이다) 확실한 것은 이 행위가 나머지 국민의 희망을 짓밟고 나라의 혁신역량을 없애는 데 단단히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시재생이라는 지방경제 활성화는 부동산을 잡지 못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혁신성장’ 역시 마찬가지다. 동서고금, 부동산 가격을 방치하고 성공한 나라는 없고, 모든 금융위기 앞에는 부동산 버블이 있었다. 물론 언젠간 거품이 터지고 고통스러운 금융위기 속에서 이 문제가 ‘폭력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과연 우리 모두의 합의에 의해 이 불평등의 뿌리를 서서히 제거할 방법은 없는가? 있다. 촛불시민이 만든 문재인 정부마저 단기의 정치적 이익과 무지에 휘둘려 이를 외면한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정태인 | 독립연구자·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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