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사회, 기업 지배구조’의 약자인 ESG가 대세이다. 서울 시내버스에 ‘ESG’를 뚜렷이 쓴 광고판이 붙을 정도이다. 세상은 금방 환경 정의가 강물처럼 넘칠 것만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플라스틱으로 오염된 바다를 염려한다. 핵무기를 가진 나라들이 탄소중립을 강조할 때 세계 시민들은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바다 방출을 걱정한다.
지난 4월19일, 일본의 ‘미나마타’ 질병 환자들이 행동에 나섰다. 그들은 일본 정부의 방사능 오염수 방출 결정이 과거의 잘못에서 배우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1956년, 미나마타의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은 시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손발의 감각을 잃고 심각한 경련으로 죽었다. 그 참혹한 비극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65년 동안의 경험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본 정부가 안전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방사능 오염수에 남은 ‘트리튬’(삼중수소)이 안전해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희석해서 바다에 버린들, 바다에 방출되는 그 총량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난 4일 오세아니아 16개국 지역 협력체인 ‘태평양제도 포럼’은 세계원자력기구에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출 결정에 깊은 우려를 전달했다. 지난 50년간 태평양에서는 핵오염이 건강과 안전을 해치는 데 대한 우려가 컸다. 회원국들은 일본에 증거에 기초한 과학적 영향 평가를 요구하였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출을 막을 방법은 있다. 일본에 오염수를 방출하기 전에 오염수가 해양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평가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것이 국제법이다. 유엔해양법 협약 206조는 ‘계획된 행동’이 해양 생태계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국제사회와 공유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 국제법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일본의 아소 부총리가 오염수 ‘처리수’를 마셔도 좋다며 말한 국제기준은 해양 생태계에 대한 기준이 아니다.
이미 후쿠시마 연안 바다에는 2011년 불행한 대지진으로 다량의 방사능 물질이 바다에 흘러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사고가 터졌다. 여기에 다시 이번 일본 정부의 방류 결정은 125만t이 넘는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로 넣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땅에서는 매일 140t의 오염수가 생긴다. 일본은 이를 모두 종합하여 방출이 해양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평가한 후에 방출 여부를 결정할 국제법적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일본이 한 것이라곤 트리튬을 희석하여 산포하는 모델을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 정부에 의하면 방사능 오염수에는 63가지 핵종이 있다. 일본 정부의 ‘다핵종 제거 설비’로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125만t의 모든 오염수에서 세슘과 스트론튬 등의 핵종을 제거할 수 있는지 담보할 수 없다. 트리튬을 희석해 규제 기준 이하로 방출한다고 하나 미나마타병 피해자들이 말했듯이 생태계로 나가는 총량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 4월30일, 일본의 독립 방송인 <거리의 라디오>에 출연한 히로아키 고이데 전 교토대 교수는 원자로의 노심부가 녹아버린 후쿠시마 사고에서 나왔을 트리튬의 양은 통상의 원자로 가동 때보다 심각한 양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국무총리실이 ‘관계 부처 합동’으로 꾸린 ‘후쿠시마 대응 TF’의 전문가들은 작년 10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관련 현황’ 보고서에서 “해양 방출 수년 후 국내 해역에 도달하더라도 희석돼 유의미한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썼다. 몹시 궁금했다. 도대체 일본으로부터 어떠한 오염수 평가정보를 제공받았기에 그런 의견이 나왔는지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 청구했다. 그러나 해양수산부 장관은 4월20일, 내게 일본 정부는 오염수 방출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통지했다.
그동안 원자력산업계는 육상에서 바다로의 방사능 물질 방출을 엄격히 규제하지 않는 모순된 ‘관행’에 의지해 방사능 폐기물을 처리했다. 여기에 젖은 원자력 전문가들에게는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출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이라면 앞으로 대략 1년 정도 지나 일본이 가지고 올 자료 내용을 수용할 것이다. 이들로는 일본의 오염수 방출을 막을 수 없다.
일본의 오염수 방출은 막을 수 있다. 그 시작은 원자력의 관행 논리에 익숙한 사람들 대신 생태환경 전문가를 중심으로, 일본의 자료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우리 내부 체계를 새로 갖추는 일이다. 그리고 일본에 오염수와 바다에 관한 자료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한국 자체 연구를 축적하는 일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아니라 환경부가 중심에 서야 한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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