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윤경|에듀머니 이사
4000만원짜리 전세에 사는 이모씨는 세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이다. 월 130만원으로 자녀들을 고등학교까지 교육시키고 이제는 자녀들의 독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세가격은 7년째 그대로이다. 사정이 딱하다는 것 때문에 주인이 배려한 덕이지만 대신 집수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네식구가 살기에 어려움이 많다.
현재 조건부수급자 조건에서 제공되는 복지 서비스로 소득이 130만원이지만 빚 없이 살아왔다.
다만 저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세금을 올려주거나 이사를 해 지금보다 쾌적한 집에서 살고 싶지만 막막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희망플러스통장을 신청해 자격을 받았다. 이 제도는 저소득계층의 자립·자활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미국 워싱턴대학 마이클 세라든(Michael Sherraden) 교수가 창안했다. 경향신문 DB
공적급여 형태의 기존 복지정책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자산 형성 지원정책이다.
빈곤계층이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자산 형성이 안된 상태에서 빚이 늘어나는 취약한 재무구조의 영향이 크다. 공적급여는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고 불안정한 상황을 보완하는 것이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거나 급여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 저축이 불가능하다.
결국 다시 빚이 발생하고 그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이 가중되는 것이 문제다.
자산 형성 지원제도는 빈곤계층의 새로운 자립·자활 기반을 마련해준다는 의미에서 대단히 큰 가치를 지닌다. 자산 형성 지원이지만 기존의 공적급여와 달리 수요자가 능동적으로 저축을 하면 그만큼 매칭방식으로 저축을 지원하기 때문에 역동적인 복지제도로 볼 수 있다. 즉 참여자가 10만원을 저축해야 매칭으로 10만원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첫째는 적은 금액으로도 자산 형성 가능성이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낮은 소득수준에서는 저축을 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 결국 소액 저축에 머무는데 이러한 현실이 저축의 동기마저 완전히 꺾어버린다.
저축금액만큼 매칭 지원이 이뤄지면 저축 규모가 늘어나기 때문에 저축 동기가 이전에 비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스스로 저축하는 능동적 참여로 자존감을 형성해주기 때문에 자립·자활 의지를 높인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축의 기본적인 속성, 즉 미래에 대한 희망도 구체화한다.
상담현장에서 만난 이씨 또한 전세금 마련을 위한 저축이 절실했으나 멀기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시의 지원을 통해 전세금마련통장을 갖게 됐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이전보다 더 알뜰하게 생활하는 것은 물론 자녀들에게 스스로가 자랑스럽다고까지 말한다.
미소금융이나 햇살론을 이용했던 저소득계층의 반응과 상당히 다르다. 정부의 도움으로 급한 돈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낮은 금리라도 빚은 빚이다.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프다는 상담자가 많았다. 그에 비해 저축 지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자립·자활에 효과적일 뿐 아니라 저소득층의 생활 만족에도 구체적으로 보탬이 된다.
과거 서울시는 광고와 달리 많은 시민에게 혜택을 주지 못했다. 현재까지 누적 가입자 수가 3만5000여명에 불과하다. 물론 이 또한 의미있는 결과이지만 매년 30만명이 수급자 신청을 하는 것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적은 수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의 심각성이 날마다 더해지고 있는 현실이고 중산층조차 저축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을 감안할 때, 가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빚을 늘리기보다 저축을 지원하는 데 더 적극 나서야 한다.
예산이 부족하다면 금융회사들을 압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동안 예금자의 돈으로 수익잔치를 하면서 소수 주주들의 배만 불려오지 않았는가.
예금자의 돈으로 번 돈은 사회에 제대로 쓰여야 한다. 그래야 경제구조도 건강해지고 금융회사의 장기 재정건전성에도 보탬이 된다. 사회공헌 차원을 넘어 금융회사의 의무로 저소득 서민계층의 저축 지원 강제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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