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기 놓친 거시정책이 부른 경기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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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

적기 놓친 거시정책이 부른 경기둔화

by eKHonomy 2018. 11. 1.

최근 주가가 급락하고 기업경기실사 지수도 5월 이후 계속 하락 추세이고 고용률도 9월에 다소 개선되었지만 3월 이후 전반적으로 하락 추세에 있다. 경제 상황이 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일부 주장처럼 경제위기는 아니다.

 

올해 성장률 전망이 3.0%에서 2.8%로 하향 조정되었지만 한국은행 등 각 경제전망 기관의 잠재성장률 추정치 2.8~2.9%를 고려할 때 경제위기는 아니다. 취업자 수 증가 둔화를 갖고 고용위기라 하지만 고용률은 2018년 9월 61.2%로 2017년에 비해 0.2%포인트 하락한 것에 불과하고, 2016년 9월 61%보다 높은 수준이다. 2016년이 고용위기가 아니라면 지금도 고용위기일 수 없다.

 

그러나 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선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을 써야 한다. 정부는 지난 24일 일자리 창출 종합대책을 제시했다. 인건비 부담으로 베트남, 중국으로 공장을 옮긴 대기업이 조세 특혜 조금 준다고 과연 국내로 복귀할지 의문이고, 유류세 한시 인하는 초과세수 긴축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역진적 감세정책이고, 기후변화·미세먼지 등 환경정책을 강화하고 포용적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증세 기반을 모색해야 하는 문재인 정부 정체성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빈 강의실 불 끄기 단기 알바 일자리” 같은 급조된 일자리 정책은 보수야당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이번 종합대책은 경제정책의 적시성을 놓친 정부가 내놓을 수밖에 없는 궁여지책이란 것이 대체적 평가다.

 

한국경제 기초조건(fundamentals)은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주가 급락에서 보듯이 외국인 투자자를 비롯한 주요 경제 주체들은 현 상황을 위기 국면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국경제 기초조건에 대한 우려라기보다는 문재인 정부 거시경제 관리능력에 대한 우려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후 우리가 얻은 교훈은 거시경제 관리능력도 한국경제 기초조건의 중요한 부분이란 것이다. 금융시장의 우려를 가볍게 봐선 안되는 이유다.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이 필요한 상황에서 일부 여권 핵심 인사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준금리를 인상해 부동산 가격을 잡아야 한다는 엇박자 주장을 했다. 기준금리는 고용과 물가 상황 등 전체 거시경제 관리 측면에서 판단할 문제이지 금융안정, 부동산 같은 분야별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수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권 핵심부에서 기준금리 인상과 같은 엇박자 주장이 나온 배경이 없는 것도 아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일곱 차례 파격적으로 인하해 2% 수준으로 낮췄는데, 박근혜 정부 때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경제위기가 없었음에도, 기준금리를 여섯 차례 인하해 1.25% 수준으로 낮췄다. 기준금리 1.25% 인하는 “빚내서 집사라”는 초이노믹스를 확실하게 도와주었고, 그 결과 가계부채는 1500조원에 달하게 되었다. 가계부채 위험 증가, 부동산 가격 상승,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의한 자본 유출 가능성, 금융 불안정 등의 문제로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었고, 금융통화위원회는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이후 기준금리를 1.5%로 올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거시경제정책 수단으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던 데 반해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확장적 통화정책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고 재정정책에 대해서만 재량권을 갖는 불리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거시경제정책 수단으로서 그 어느 정부보다도 재정정책이 중요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문재인 정부가 이런 인식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세수추계 오류로 대규모 초과세수가 3년 연속 발생했다는 것은 기획재정부의 단순 실수로 넘어가기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2018년 예산안은 일자리 정부와 포용적 복지국가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짠 첫 본예산인데, 국회예산정책처는 균형재정에 가까운 긴축 편성이라고 분석했다. 긴축재정 오류를 수정할 절호의 기회를 총지출 대비 0.9%짜리 초미니 추경으로 허비한 것을 보면 기획재정부 재정정책 기조는 내수 활성화가 아니라 재정건전성에 맞춰져 있었다고 보인다. 고용상황과 국세 진도율을 보면서 5~6월 즈음에 24조원 규모로 포용적 복지와 일자리 추경을 실행했다면 이번 일자리 종합대책 같은 궁여지책을 써야 하는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거다. 문재인 정부 거시경제정책 중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경기 둔화는 정책 실기에 대한 시장 반응인 것이다.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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