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길에서]문재인 정부, 과연 재벌의 늪에 빠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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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정동길에서]문재인 정부, 과연 재벌의 늪에 빠진 걸까

by eKHonomy 2019. 10. 23.

지난 14일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시안(西安)에 있는 삼성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 중국 총리가 자국 내 한국 공장을 방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중 간 경쟁은 결국 기술패권 경쟁이고, 중국이 과학기술 발전을 통한 혁신주도성장에 올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를 해석할 수 있다. 기술력에서 중국이 한국에 뒤처진 분야는 사실상 메모리 반도체 분야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국의 기술력이 올라왔다는 게 산업전문가들의 분석이고 보면, 한국 반도체산업을 따라잡으려는 중국의 의지를 읽기에 충분하다. 중국의 반도체 기업에 던지는 분발의 메시지가 담겨 있음도 분명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에서 열린 신규투자 및 상생협력 협약식에 앞서 폴더블 폰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제품을 체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디스플레이(10일), 현대·기아차 기술연구소(15일)를 잇따라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을 만난 것을 두고 ‘친대기업 행보’ ‘친재벌 행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리 총리의 삼성 반도체 공장 방문이 오버랩됐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문 대통령의 삼성디스플레이 공장 방문을 ‘친재벌 반노동’이라고 비판하는 등 진보진영에서 최근 정부의 정책기조를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점에서 기업 투자를 독려하는 대통령과 정부의 행보는 앞으로 더 빨라질 수 있고 문재인 정부도 결국 이전 정부처럼 재벌에 포획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각국 지도자들이 첨단 기술 현장을 찾는 것은 기술패권 경쟁 시대에 당연한 행보이지만 한국에서는 뒷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물론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는 것이 실제로 투자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재벌에 유화적 정책을 많이 펼쳤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규제를 철폐하고, 법인세를 깎아주기도 했지만 기업투자가 크게 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기업투자가 고용을 늘리고, 내수에 보탬이 되며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자명하다. 중국이 무섭게 추격하는 현실에서 투자 부진은 한국 경제의 암울한 미래로 직결된다. 


대통령이 죽을힘을 다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정부가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여러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어쩌면 현장에서 던지는 대통령의 격려는 기업인들의 잠자던 야성을 일깨울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술혁신과 경쟁력 강화는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판세에 대응할 수 있는 국가경제의 힘이 된다. 문 대통령이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전 세계가 ‘혁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많은 정책목표들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어 이해가 상충될 여지가 많고 정부의 정책수단은 제한적이다.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와 속도를 조정해야 하는 게 정부의 임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지적처럼 가능한 여러가지 답을 늘어놓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일지 모른다. 정부정책을 친기업, 친노동의 프레임에 가둬서는 유연성 있는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잊지 말아야 할 정경유착의 뿌리 깊은 폐해가 있음도 당연히 부인할 수 없다. 정부와 재벌 간의 관계를 밀월로 규정하기는 이르지만 그 같은 우려를 마냥 무시해선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전 정부들이 재벌에 포획돼 여러 개혁정책을 포기하는 것을 목도했던 경험이 현 정부의 행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기업이 투자 활성화를 지렛대 삼아 정부에 뭔가 대가를 바라고 정부가 이를 눈감아주던 행태가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부는 앞으로 성장과 분배, 대기업과 노동계의 요구를 조율하면서 한국 경제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최적의 방안을 도출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조국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신뢰가 무너져 있음을 뼈저리게 목도했다. 의견이 달라도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으면 서로를 존중하고 갈등을 해결해 갈 여지가 생긴다. 재계뿐 아니라 노동계와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정부의 세심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특히 경제력 집중 현상을 해결해 공정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어느 정부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소명이다.

대기업들도 반칙을 처벌하려는 정부를 기업 옥죄기로만 매도해서는 안된다. 1970년대 초 포항제철을 짓는다고 세계은행에서 돈을 빌리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말렸다고 한다. 반도체, 자동차 산업도 ‘조그만 나라가 왜 무리한 투자를 하느냐’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에 성공해야 진정한 기업가가 될 수 있다. 이런 기업가들이 나와야 한국 경제가 살 수 있다.


<오관철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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