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의 간격을 두고 두 명의 슈퍼스타가 한국을 찾았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토마 피케티 교수,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한껏 품위를 자랑하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들에게 붉은 색칠을 했다.
교황은 현재의 사회구조를 “규제 없는 자본주의, 곧 새로운 독재”로 진단하고 “경제적 수익을 국가가 합법적으로 재분배하고 동시에 사적 부문과 시민사회가 불가결하게 협동해야 한다”는 처방을 제시했다. 나아가 이런 상황에 대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은 착취나 노예, 그리고 다른 사회적 질병에 대해 공모하는 것”이라며 특히 “사제들은 거리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피케티는 부와 소득에 관한 300년 장기통계를 통해 최근 30여년간 부와 소득이 최상위 부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래도 희망적이었던 전후 30년은 두 번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 때문에 생겨난 예외적 기간이었다. 그의 처방은 글로벌 자본세와 80%에 이르는 누진소득세다. 전 세계를 휘돌아 월스트리트에서 정점에 달했던 오큐파이 운동의 “1% 대 99%” 구호는 그의 통계에서 비롯되었다.
마이클 노박 등 보수주의 가톨릭 신학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의 특수한 경험을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노박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빈털터리로 미국에 건너온 자신의 할아버지가 오로지 자신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성공했으며, 나라로는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됐던 한국의 기적을 보라고 외쳤다.
하지만 피케티는 노박의 할아버지 시대가 오히려 예외라는 사실을 U자형 그래프를 통해 보여 주었다. 미국민들이 아직도 금과옥조로 믿고 있는 능력주의(meritocracy)는 금권주의(plutocracy)로 변했다. 18세기 귀족과 왕의 구대륙을 비판하며 세워진 ‘기회의 땅’ 신대륙(토크빌은 물론 마르크스도 이 땅을 예찬했다)은 1970년대 이래 유럽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불평등해지고 있다.
노박이 손꼽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일본인 재산 몰수와 농지개혁,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1960년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평등했다.
하지만 한국은행과 통계청의 국민대차대조표로 계산한 2012년 한국의 베타값(자산 가치를 한 해 국민소득으로 나눈 수치)은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이다. 1990년대 중반 이래 빠른 속도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선진국보다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EHESS) 경제학과 교수가 19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세계지식포럼의 사전행사로 마련된 '1% 대 99% 대토론회'에 참석한 뒤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교황도, 피케티도 ‘빨갱이’가 아니다. 가톨릭 사회 교리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쪽을 비판하며 애초부터 ‘제3의 길’을 주장했으며, 열여덟의 나이에 소련의 붕괴를 지켜본 피케티에겐 일말의 환상도 없다. 두 슈퍼스타가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와 자유다. 국민의 50%가 부의 5%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사회, 상위 10%가 부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한국의 공식 센서스 통계로는 45%이지만 세금자료로 분석하면 이 수치는 훨씬 커질 것이다. 영국도 센서스 자료로 44%이지만 피케티의 계산으로는 71%다)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고 서민은 자유를 한껏 누릴 수도 없다.
특히 자산소득 대 노동소득의 비율이 일정하다는 ‘보울리의 법칙’, 자본주의 초기에는 불평등이 심화되지만 어떤 시점을 지나면 평등해질 것이라는 ‘쿠즈네츠 가설’, 모든 사람의 보수는 그가 사회에 기여한 바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클라크의 한계생산력설’ 등 1960년대에 정립된 가설들을 현재의 사실에 비춰 꼼꼼하게 검증해야 한다.
불평등을 시정하는 시장의 객관적 법칙이란 이론적 유토피아에만 존재한다. 오히려 지금처럼 규제를 없애고 최고 세율을 낮추면 현재의 불평등은 19세기 말 귀족사회를 능가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아이들이 그런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는가. 두 슈퍼스타는 맨눈으로 현실을 보라고 촉구하고 있다. 빨갱이들의 헛소리라며 두 귀를 막는다면 세상은 파국으로 향할 것이다.
정태인 |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온라인 경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알리바바의 대박 상장, IT 코리아는 어디 갔나 (0) | 2014.09.22 |
---|---|
[아침을 열며]‘저항’ 부르는 담뱃세·지방세 인상 (0) | 2014.09.21 |
[사설]실적 악화에도 일당 1000만원씩 챙긴 금융지주 회장들 (0) | 2014.09.21 |
[사설]“부자감세는 없었다”는 새누리당의 궤변 (0) | 2014.09.19 |
[기고]누구를 위한 증세인가 (0) | 2014.09.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