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제로성장의 시대
본문 바로가기
온라인 경제칼럼

[정동칼럼]제로성장의 시대

by eKHonomy 2012. 6. 28.

손열 | 연세대 교수·국제정치


 

글로벌 불황(global recession)의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다. 폭풍우로 이어질지는 몰라도 상당기간 햇살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불행히도 차기정부는 5년 내내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야 한다.


그리스의 국가채무위기는 유로존 전체의 위기로 전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적극적인 대응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채무조정은 난망이고,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전염되는 것을 막기에 유럽중앙은행 및 IMF의 금융안전망은 역부족이다. 이미 유럽의 은행들은 기능부전상태이고 유로권 중심국인 독일마저 실물경기의 위축이 뚜렷하다.



(경향신문DB)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완만한 회복세를 보여왔으나 유럽의 침체로 GDP 2.4% 성장, 실업률 8.2%의 낮은 성적표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제로성장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간 세계경제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중국 역시 성장세 둔화가 역력하여 2011년 9.2%의 성장률에서 올해는 7%대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구촌의 침체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최대 이유는 바로 거버넌스 능력의 현저한 약화에 있다. 장기침체를 막으려면 국가간 협조체제를 구축하여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 남유럽은 부채 규모가 어림잡아 독일 GDP의 2배가 될 만큼 거대하다. IMF나 유럽중앙은행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여서 국가간 새로운 합의에 의해 자금을 마련해야 할 형편이다. 


문제는 협조체제의 핵심 국가들이 내향적 성향을 보이는 데 있다. 자국 경제회생에 여념이 없는 미국은 글로벌 불황 대책을 유럽의 문제로 떠넘기고 있다. 일본은 부채삭감이란 국내정치 아젠다에 몰두해 있고, 경기둔화에 고심하는 중국 역시 국제협조를 주도할 여유가 없다. 모두가 유로존의 강자 독일을 바라보고 있는 반면 독일은 국내의 반대여론 때문에 짐을 떠안는데 주저하고 있어 전도는 어둡다. 


더 큰 문제는 현재 겪는 위기의 예측불가능성이다. 21세기 들면서 어느 누구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것이 남유럽 부채위기를 초래하여 유로존 위기와 글로벌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하지 못하였다. 자산가격 폭락, 유동성 축소, 금융시스템 붕괴, 환율전쟁, 부채위기, 인구변화, 자원고갈 등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글로벌 불황을 가져오는 과정은 대단히 역동적이어서 기동적이고 복합적인 국제적 대응이 요구된다. 현재의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로는 역부족이고 재건축의 기약도 없다. 


이 모든 것이 한국에는 엄청난 시련이다. 무역이 GDP의 80%를 상회하는 대외지향적 경제체제여서 외부충격에 대단히 취약하다. 유럽의 침체로 수출에 차질을 빚으면서 올해 성장률 전망은 2%대로 하향조정되고 있다. 미국 수준이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능력이 심각히 저하된 속에서 향후 대외변수는 더욱더 한국을 옥죌 것이다. 이와 함께 급속한 인구고령화를 겪고 있어서 생산성 하락과 사회보장비용 증가란 구조적 제약에 당면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20-50 클럽’과 같은 장밋빛 미래는 접고 안타깝지만 제로성장 시대를 각오해야 한다.


성장을 전제로 한 국가전략은 모두 조정 대상이다. 세수가 정체되고 재정적자 규모가 급속히 늘어나는 속에서 여느 선진국처럼 부채감축이란 쟁점을 놓고 정치공방을 벌일 것이다. 이와 함께 한정된 재원 배분을 둘러싸고 사회보장, 국방, 교육 등 국가정책의 우선순위 재조정문제가 필연적으로 뒤따를 것이다. 한국외교는 글로벌 경제거버넌스의 재건축, 시장확보,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외교 비중을 상향조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이분법 논리는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 성장이 전제되지 않는 자본주의모델을 찾아내는 것이 숙제다. 선거판 속에서 정부는 돈을 풀고 경기를 살리고자 온갖 단기적인 노력을 경주할 것이고 대선후보들은 장밋빛 청사진으로 각축을 벌이겠지만 정작 세상은 우리에게 새롭게 살기를 촉구하고 있다. 시대의 한 획이 그어지는 느낌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