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지난 10월31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2050년 이산화탄소 순배출 제로(넷 제로)”를 선언했다. 영국,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는 이미 넷 제로를 법에 명시한 국가이며 칠레, 뉴질랜드도 뒤를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 현재 탄소 넷 제로를 선언한 나라는 16개국에 이른다. 한국은 의원 6명의 미니 정당 하나만 국제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국은 2017년 현재 온실가스의 핵심인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 1인당 배출량 2위를 차지했고 2007년 대비 10년 동안 이 수치는 24.6% 증가했다. 같은 기간 OECD 전체 배출량이 8.7%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우리는 분명히 파렴치한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발표한 감축 목표를 보면 이런 책임에 대한 감각조차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배출량을 2020년 5억4300만t까지 줄이겠다고 약속했고, 박근혜 정부는 2030년 5억3600만t으로 후퇴했다. 불행히도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 목표는 3.5도 기후 상승에 대응하는 것으로 파리협약의 2도, 최근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1.5도 권고와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수치다.
‘생태전환’은 지금 우리에게 절박한 정책기조이다. 생태전환의 기본 정책수단은 탄소세에 의한 시장의 변화와 녹색산업정책, 특히 정부주도의 기술혁신과 인프라 투자이다. 넷 제로로 가는 기본 경로는 모든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고, 에너지 효율적 기술 혁신과 소비 축소로 전기 사용량을 줄이며, 여기에 들어가는 전기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 시민들이 전력을 다하면 초기 10년 동안 대대적 투자가 일어나서 성장이라는 ‘생태배당’을 얻게 되고 기술혁신에도 성공해서 역대 정부의 목표인 기술 선진국의 지위에 오를 수 있다.
기온 상승을 1.5도 내로 묶으려면 탄소세는 어느 수준이 되어야 할까? 스턴과 스티글리츠는 2017년까지 제출된 시나리오를 종합해서 2도 파리목표를 달성하려면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1t 당 40~80달러, 2030년에는 50~100달러여야 한다고 추정했다. 즉 우리는 2030년까지 대략 t당 75달러 이상의 탄소세를 부과해야 한다. IMF는 한국의 배출권 거래시장의 탄소가격을 근거로 현재의 가격을 22달러로 추정했는데 이 계산에 의하면 11년간 50달러 이상을 인상해야 한다. 탄소배출 순제로에 이르려면 2050년까지 125달러까지 올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t당 탄소세 75달러는 각종 에너지 가격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IMF의 최근 추정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전기 42%, 석탄 220%, 천연가스 47%, 가솔린 6%의 가격 상승이 일어난다. 이 정도가 되더라도 현재 우리보다 각각 45%와 65% 높은 독일과 일본의 산업용 전기가격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낮은 전기료로 버텨온 우리 제조업이 에너지 효율성을 독일과 일본 수준까지 높이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날 길은 없다. 화석연료 보조금은 우리 산업을 병자로 만든 마약이다.
모든 구조 전환은 자본과 노동의 급격한 이동을 동반한다. 정부의 녹색 산업정책은 이러한 이동을 촉진한다. 신생 생태산업을 지원하고 쇠퇴산업 지역의 재생 또는 변화를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 예컨대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꾸려면 배터리 기술의 급진적 혁신이 필요하고 자동차 부품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기 때문에 대구에서 창원에 이르는 지역의 경제를 새로운 산업으로 무장시켜야 한다. 이런 ‘거대한 전환’을 위해서 경비성 경비와 복지 예산을 뺀 모든 예산을 전환투자에 써야겠지만 t당 75달러 때의 탄소 세수 약 27조원은 전적으로 이러한 구조조정에 쓰여야 할 것이다. 군·구의 주민들이 자기 지역에 걸맞은 에너지 믹스(예컨대 태양광과 풍력과 바이오매스의 최적 조합)를 찾아내고 군·구의 발전 협동조합(주식회사)을 운영하는 것도 핵심적 사업이다.
지난 19일 정부는 ‘2020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대대적 투자를 통해 현재의 침체 국면을 돌파하는 동시에 성장잠재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AI와 빅데이터, 스마트 시티 등 최근 유행어로 가득 찬 123쪽의 문건 어디에도 생태전환의 장기 전략은 없다. 다만 ‘미래 선제 대응’ 항목에서 미세먼지 배출원과 수입폐기물 관리의 강화, 그리고 ‘기후변화 선제 대응’ 항목에서 여전히 부족하기 짝이 없는 목표(2017년 대비 2.5% 감축)를 달성하기 위한 배출권 거래시장 기능 강화에 단 세 쪽(pp.100~102)을 할애했을 뿐이다. 이들은 왜 27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포함한 주류경제학자 48명이 “탄소세가 가장 비용효과적인 탄소배출 감축 수단”이라고 선언했는지, 현재의 경제구조 개혁에서 생태전환이 왜 핵심적 지위를 차지해야 하는지 생각조차 한 적이 없다. ‘전환적 지도자’와 ‘전환적 정당’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온라인 경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NGO 발언대]새로울 것 없는 경제정책 (0) | 2019.12.30 |
---|---|
[사설]바람 잘 날 없는 대한항공 오너 일가, 경영권 분쟁까지 (0) | 2019.12.30 |
[사설]현실화된 ‘ISD 공격’, 근본적 개선책 마련해야 (0) | 2019.12.23 |
[사설]고위 공직자들의 잇단 ‘1주택 권고와 서약’을 주목한다 (0) | 2019.12.20 |
[사설]성장 우선의 내년 경제정책 기조, 공정경제 후퇴 안된다 (0) | 2019.12.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