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대한항공의 진짜 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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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편집국에서]대한항공의 진짜 오너

by eKHonomy 2018. 5. 18.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둘째 딸이자 대한항공 전무였던 조현민씨는 ‘물벼락 갑질’ 사건이 보도되자 “광고에 대한 애착이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넘어서면 안되는데 감정관리를 못했다”고 페이스북에 밝혔다. 그의 광고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상대가 재벌 자제이거나 정치 권력자, 고위 공무원이었다면 험한 말을 하며 물컵을 던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땅콩 회항’을 일으킨 언니 조현아 전 부사장뿐 아니라 오빠인 조원태 사장도 직원들에 대한 진상질로 악명이 높다. 삼남매의 어머니 이명희씨는 자가용 기사에게 욕설을 하고 침을 뱉었다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재벌 총수나 중소기업주의 갑질도 이에 못지않다. 1인 1표의 정치민주화는 이뤄졌지만 직장인들의 상당수는 기업과 기업주의 괴롭힘과 불합리한 통제를 받고 있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원칙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주권자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기업의 노동자로서 일종의 임금 노예’인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찍이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정치적 평등은 경제적 불평등 앞에서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다. 소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재산, 다른 사람들의 노동,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경제적 폭정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정부라는 조직화된 권력에 호소해야 한다.”(1936년 대통령 재지명 수락 연설) 문재인 정부도 조양호 일가에 대한 전방위 사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 회장 일가가 패가망신해도 대한항공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대한항공의 진짜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양호 회장이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대한항공 지분은 0.01%로 매우 미미하다.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대한항공 지분과 인하대법인 등 특수관계인의 우호 지분까지 합치면 조 회장 일가의 대한항공 지분은 약 11%이다. 흔히 재벌 총수들을 ‘오너’(owner)라고 한다. 하지만 조 회장 일가가 대한항공 오너라면 2억원짜리 아파트에 보증금 2000만원을 내고 사는 세입자도 그 집의 오너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조 회장 일가는 연 매출 12조원의 대한항공을 사유재산처럼 여기고 직원 1만8000여명을 몸종처럼 부리고 있으니 세상에 이렇게 불공정한 일이 없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은 법인격을 부여받아 자연인처럼 자유와 권리를 향유한다. 원활하고 효과적인 생산 활동을 위해서다. 문제는 어느 순간 기업의 자유와 권리가 기업인의 것으로 변질되고 그것을 대주주나 경영자가 독차지한다는 점이다. 대한항공도 마찬가지이다. 조양호 개인이 대한항공이라는 주식회사와 동일시되고, 대한항공에 대한 정부의 감시와 시민사회의 견제는 조양호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조 회장 일가의 탈세와 밀수, 배임·횡령, 직원 폭행, 필리핀 가사 도우미 불법 채용 등이 그동안 묵인되고 방치된 이유이다. 총수들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누리면서도 책임은 모두 직원들에게 넘긴다. 잘못이 드러나도 경제 상황이 안 좋다는 이유로 처벌을 피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고도 회사가 어려워지면 ‘뼈를 깎는 구조조정’ 운운하며 주식을 팔고 떠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다르다. 기업주는 ‘먹튀’가 가능하지만 직원은 불가능하다. 직장이 삶의 터전이자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고 해서 이민을 떠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사람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한다. 기업의 진짜 오너는 이런 노동자들이다. 사실 노동자들은 재벌·대기업 지분도 엄청나게 갖고 있다. 노동자들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만 해도 대한항공 지분을 12.45% 보유하고 있다. 조 회장 일가보다 더 많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연기금이 어떤 기업의 최대주주라면 익명의 노동자들이 최대주주라는 말과 같다. 최대주주인 노동자들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도 사리에 맞는 일이다”라고 했다.

 

박정희·전두환 독재에 북한의 권력 세습을 더한 것이 한국의 재벌 총수들이다. 그들이 끊임없이 기획하고 연출하는 최고의 막장 드라마는 능력이나 인성 면에서 깜도 안되는 자녀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것이다. 지분도 쥐꼬리만 하면서 동네 치킨집도 아닌 수조원짜리 주식회사를 상속하려니 정상적으로는 방법이 없다. 총수들이 검찰청을 들락거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국제 투기자본의 공격 대상이 된 것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제 민주화가 자본주의를 위협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진정으로 걱정할 것은 자본주의에 인권이 짓밟히고 민주주의가 질식당하는 일이다.

 

<오창민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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