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DC와 책임 있는 금융혁신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9일 디지털자산의 ‘책임 있는’ 발전 보장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디지털자산은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형태로 발행되거나 표시되는, 지급 결제 혹은 투자에 이용되거나 자금 등을 이전하고 교환하는 데 사용되는 일체의 금융자산과 수단, 청구권을 의미한다. 예컨대 가상통화, 스테이블코인,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 행정명령은 디지털자산 및 CBDC에 대한 미국의 핵심 정책 목표와 함께 범정부 차원에서 각 부처들이 수행해야 하는 방대한 검토 과제와 일정을 적시하고 있다. 6대 핵심 정책 목표 중에서 두 가지가 주목할 만하다. 우선 미국과 글로벌 금융 안정을 보호하고 시스템 리스크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표이다. 다수의 디지털자산 거래 플랫폼과 서비스 제공자들은 규모나 복잡성 면에서 빠르게 커지고 있는 반면 적절한 규제나 감독은 받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동일 비즈니스, 동일 리스크, 동일 규칙’이라는 일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 번째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 및 기술적·경제적 경쟁력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표이다. 특히 CBDC와 관련된 항목에서 다른 나라 CBDC들과 상호 운용이 가능한 미국의 CBDC는 더욱 빠르고 저렴한 국경 간 지급 결제를 촉진하며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미국의 중심 역할을 뒷받침하고 미국 달러화의 고유한 역할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CBDC와 관련해 재무부는 여러 관계 부처들과 협의해 6개월 내에 대통령에게 화폐와 지급 결제 시스템의 미래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65개 응답 국가 중 86%가 CBDC에 대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미국을 비롯해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경쟁적으로 CBDC 연구에 뛰어들고 있는데, 비트코인과 가상통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비은행 민간 사업자가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이 급부상하는 등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는, 적어도 초기에는 현행 금융 시스템의 작동원리와 안정성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졌기에 허가받지 않은 가상통화 내지 민간 지급 결제 수단의 발행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또 다른 배경은 플랫폼에 기반한 빅테크의 지급 결제 시장 진입 확대이다. 플랫폼 특유의 네트워크 효과, 즉 시장 독점화 경향과 데이터 독점으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 적절한 규제와 감독을 받지 않는 참여자의 등장은 지급 결제 시스템의 무결성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이를테면, 빅테크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경우 암호자산을 넘어 실물 및 금융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금융 안정과 통화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는 것이다. 메타(페이스북)가 한때 추진했던 디엠(Diem) 발행 계획과 무산이 이러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CBDC 도입에 대한 연구와 논의는 매우 활발하고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결제 인프라 운영방식이나 최적 기술 채택에서 탈중개화로 인한 자금 중개 기능 약화나 금융 안정에 미치는 영향, CBDC와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이 공존하는 금융 시스템의 구조 설계에 이르기까지. 그럼에도 이러한 전환이 기존 금융 시스템에 초래할 비용과 편익에 대한 검토와 연구는 이제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6개월 후 미국 대통령에게 제출될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포함된다. 미국 CBDC의 도입이 경제 성장과 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CBDC와 민간 발행 디지털자산 간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국정 및 민간 발행 화폐의 미래는 무엇이고, 금융 시스템과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다른 나라 CBDC의 성장이 미국의 이해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미국에 최적인 형태의 CBDC는 무엇이고 필요한 단계와 요건은 무엇인가 등등.

우리도 이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을 준비할 때가 됐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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