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윤경 에듀머니 이사
ㆍ미끼 상품에 소비자 지갑 털린 셈
대형마트의 피자와 치킨은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군 이야기 소재였다. 염가의 피자와 치킨을 접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된다. 동네 상권을 죽이는 파렴치한 장사치라 비판하는 반응과 저가의 제품을 소비할 권리를 보호하고 그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회적 가치 실현과 개인의 실리적 소비 사이에서 무엇인가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경향신문 DB
미국 예일대 로버트 실러 교수는 <야성적 충동>이란 책을 통해 ‘사고의 전염성’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시장의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논쟁이 불붙으면 이야기가 증폭돼 오히려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마케팅에서 자주 진행하는 방법론인 노이즈 마케팅과 비슷하다. 욕을 먹더라도 주목을 받고 그에 따라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덧붙여 저가로 구매할 소비자 권리라는 시장의 개념까지 끌어들여 사회적 비난에서 완전히 망가지지 않을 최소한의 방어막은 친 셈이다.
치킨은 끝내 판매 중단으로 결론이 났지만 절대 손해본 게임이 아니다. 그 논란으로 대형마트의 전체 매출이 증가했기 때문에 미끼로서의 역할은 톡톡히 하고 무대 뒤로 사라진 셈이니 말이다. 이쯤 되면 좀 더 저렴한 제품을 이용하려는 소비자들의 권리는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것으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쯤은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지역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 유통업체의 지나친 가격파괴 판매전략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대형마트 측은 ‘소비도 이념적으로 하는가’라고 지적한다. 사회적 약자, 즉 가격파괴 전략의 틈에서 경쟁력이 없는 중소상인들을 보호하는 이념적 소비는 사회적 가치 추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의 실리적 소비라는 측면에서도 이념적 소비는 그 의미가 크다. 가장 큰 의미는 미끼전략에 속지 않음으로 불필요한 소비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보의 역설> 저자 그레그 이스터 브룩은 ‘망치 열 개 증후군’으로 소비의 질이 떨어지는 현상을 지적한다. 망치 열 개 증후군이란 집안 어딘가에 분명히 망치가 있음에도 찾지 못해 다시 구매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긴 망치가 집안에 10개나 된다는 씁쓸함을 던져주는 이야기다. 이렇게 충동적이고 마케팅에 수동적인 소비가 일상화하면서 집안 전체는 불필요한 것을 ‘돌봐야’ 하는 일들로 넘쳐난다.
건강한 소비, 궁극적으로 만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소비는 충동적이거나 수동적이어서는 안된다. 소비자 스스로의 내재적 욕구를 제대로 반영할 주도적이고 신중한 소비실천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염가의 제품은 미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오히려 당장 피자나 치킨이 먹고 싶지 않음에도 싸다는 이유로 ‘지금 사러 가지 않으면 손해를 볼 것 같은’ 욕구, 즉 마케팅으로 만들어진 욕구에 반응하는 것뿐이다. 배는 부를지 모르지만 정말 먹고 싶은 때에 적합한 욕구를 채운 것도 아니다. 단지 피자와 치킨을 제값 주고 사지 않은 요행을 경험했을 뿐이다. 게다가 그 요행은 다른 불필요한 제품을 충동구매해 버리면서 쉽게 날려버렸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지갑은 상술이 부린 요술에 도둑질당한 것이다. 이념적 소비는 거창하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 같지만, 그런 착한 마음 이면에 자기의 내재적 욕구를 제대로 실현할 지혜로운 소비의사 결정까지 만들어 낸다. 결국 남을 위한 것 같지만 그 결과는 내 지갑에 남은 돈, 즉 일종의 손실위험을 제거한 착한 재테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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