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물고기’의 슬픈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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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류동민 칼럼

‘초록물고기’의 슬픈 꿈

by eKHonomy 2014. 7. 9.

<초록물고기>라는 영화를 생각한다. 인터넷 검색 중 우연히 발견하고 아련한 기억을 떠올린다. 순박한 청년 막둥이(한석규 분)는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여인(심혜진 분) 때문에 뜻하지 않게 폭력조직에 몸을 담게 되고, 보스(문성근 분)를 위해서라면 그저 순박한 “악으로 깡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몸을 바친다. 보스의 옛 보스를 살해하고 공중전화부스에서 집으로 울먹이며 전화하는 장면, 바로 그 유명한 <영웅본색2>의 장국영 신에 대한 오마주였다. 그리고 막둥이는 죽임을 당한다. 그의 “그녀”는 다름 아닌 보스의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막둥이네 식구들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 밥을 먹고 떠나는 보스와 여인.

이 영화가 1997년 작품이라는 사실은 새삼스럽다. 그 시절 풋풋했던(?) 스스로를 회상하며 젖어오던 상념은 금세 아마도 그 영화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닥쳐왔을 IMF 위기의 기억으로 옮아가고 만다. 머릿속 연상작용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니 날개라도 단 듯 이십여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잘 나가던 펀드 매니저였다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동창생, 거창한 인테리어로 동네가 떠들썩하게 개업했다가 일년도 못 채우고 떠나 버린 이름도 모르는 24시간 음식점의 내 또래 주인아저씨, 나무랄 데 하나 없이 성실하게 공부하였으나 원하던 직장을 얻는데 결국 실패한 제자, 또 그 비슷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으로 향한다. 막둥이의 죽음, 정확한 맥락도 신조차도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경제학자로서의 직업병 탓일까, 적어도 이 순간 내게는 맨주먹 하나로 사다리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려다가 결국 좌절하고 마는 수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 '초록 물고기' 중 심혜진의 연기장면(출처: 경향DB)


이미 록스타급이 되어 버린 프랑스의 젊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무려 600쪽이 넘는 책의 주제와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모든 진리의 발견은 역시 심플한 데에 있는 법이던가?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들 대다수가 <초록물고기>의 막둥이처럼 된다는 것. 더 늦기 전에 비록 유토피아적 꿈이라도 꿔보자는 것. 이미 상투적 문구가 되어 버린 말로 표현하자면, 혼자서 꾸는 꿈은 꿈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것.

지난달 이 칼럼난에 ‘경제학자들에게 보내는 격문’이라는 글을 쓰고 뜻밖에도 몇 통의 문자와 e메일을 받았다. 현실을 직접 다루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는 후배 경제학자(미안하다! 실은 그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세계적 수준의 경제학자이므로), 아마도 내 주위에서 경향신문을 읽을 최후의 사람일 줄 알았던 경제부처 공무원인 친구로부터의 격려 글(정말 미안하다! 그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고만 생각했다. “영혼”을 가질 수 없도록 만드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잠시나마 잊고 있었다. 그가 한때 군사독재 때문에 고민하던 “젊은 피”였다는 사실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적어도 꿈을 꿀 준비만은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하여 나는 믿는다. 이제 시대의 흐름은 바뀌고 있다, 아니 바뀌어야 한다고. 아이러니한 것은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한국의 “지식인들”은 바뀌는 흐름을 어쩌면 맨 마지막에 가서야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명색이 국내외 명문대학에서 공부하신 경제학자라는 분들이 기껏 재벌 돈줄로 모인 피케티 세미나에서 “배아픈 병 부추기는 피케티…기업가정신 외면”(한국경제신문(!) 6월24일자에서 인용) 등속의 수준 낮은 희망사항을 학술적 비판으로 착각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먼저 피케티에게 사죄드린다! 그분들이 그토록 동경할 MIT대학의 교수였던 분을 한낱 “종북좌파” 수준으로 매도하는 이 척박한 지적 풍토에 대해. 그러나 정말 두렵고 서글픈 것은 그분들의 뒷전에서, 실상 힘 가진 자, 말할 수 있는 자들은 <초록물고기>의 보스처럼 버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리고 어느 날 막둥이를 제거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막둥이네 식당에서 우아하게 신용카드를 내밀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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