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과 사드의 계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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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이일영 칼럼

개성공단과 사드의 계산서

by eKHonomy 2016. 2. 24.

도무지 계산의 아귀가 맞지 않는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가 있자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를 결정했다. 북은 기다렸다는 듯 개성공단 자산을 동결했다.

한국은 더 나아가 사드 배치를 거론해 미·중 갈등의 촉진자로 나섰다. 북핵 저지라는 목표는 오히려 실종되고 막대한 비용이 쌓여가고 있다. 계산을 따져보는 현실주의자들은 의아하기 짝이 없다.

정부의 조치는 북한 핵실험에 대한 보복 행동이다. 그러나 이런 강경책이 북의 추가적 행위를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동아시아 질서를 흔들어서 안보와 경제의 복합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개성공단 폐쇄는 경제학자나 시장주의자들의 계산에는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 ‘정치적 결단’이라 짐작한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행위에 따른 결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정치적 판단이 경제적 타산을 뭉개고 가는 무모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통일부에 의하면 그간 개성공단에 우리 정부와 기업이 투자한 금액이 1조원을 넘는다. 그간 지급된 임금은 6000억원 남짓이다. 개성공단 제품의 2004년 이후 반출액이 8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대강 계산해도 6조원 이상의 이익을 우리가 얻은 셈이다. 2013년 북한이 개성공단을 162일간 폐쇄했을 때 입주 기업들이 신고한 피해금액은 총 1조566억원이었다. 이번에는 피해액이 훨씬 커질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로 우리 측의 손실 규모는 올해 30억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면 세수 1%에 가까운 비용이다.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의 부담을 기업인들과 국가재정이 나누어 져야 할 상황이다. 이렇게 해서 북한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북한 측의 경제적 효과는 임금과 법인세를 합하여 1억달러 정도의 손실을 입게 되는데, 근로자 일부를 중국이나 러시아에 파견할 경우 손실을 메울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회원이 한반도 내 사드 배치 중단을 촉구하던 중 경찰에게 저지당하고 있다._연합뉴스

북한이 핵실험을 시작한 것은 2006년이고, 2009년, 2013년에도 핵실험을 했다.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 정도로 핵실험을 처벌하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의 핵실험은 체제의 존망을 걸고 시도하는 것이다. 핵개발 문제를 작년 발생한 지뢰 사건 같은 것과 비견할 수는 없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핵무기 보유와 비슷한 가치로 계산하고 있을 리 없다. 개성공단 카드도 좀 더 세분화해서 여러 가지 방안을 준비해두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데 쫓기듯이 한방에 남북관계 전면 중단이라는 카드로 날려버렸다.

뒤이어 나온 사드 배치 논의는 더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는 덜컥 수가 분명하다. 사드가 북의 핵무기를 잡을 수 있는가 아닌가 하는 기술 문제는 사전에 완벽하게 계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하게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과 행동이다. 사드 배치가 강행될 경우 중국은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간 쌓아온 한·중관계가 무너지고 대신 중국은 북한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경사할 것이다. 중단되었던 북·중간 최고위급 외교가 재개되고, 전투기 등 무기 수출과 합동 군사훈련 등 군사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사드 배치 반대를 고리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군사협력이 확대될 것이다. 한·중간 무역, 투자, 민간교류 등에서는 다양한 종류와 수준의 제재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 비핵화 의제는 오히려 후순위로 물려질 것이다.

현재의 한·중관계와 동아시아경제는 미·중 협조관계의 구조 위에 형성된 것이다. 이는 미국이 베트남전 개입에 실패하고 동아시아에서 일부 후퇴하면서 대안으로 만들어졌다. 미·중 사이에는 협조를 기본으로 하면서 그 안에서 상호 견제와 갈등이 이루어져 왔다. 이 틀 속에서 동아시아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드로 인해 미·중관계의 틀이 바뀌면 그간의 한국형 성장모델 기반도 무너진다. 집권 측이 엄청난 일의 대가를 계산하고 있을까 걱정이다.

일본의 문호 엔도 슈사쿠는 <바다와 독약>(1958)이란 소설에서 일본인들이 겪은 전쟁과 정신적 황폐를 묘사한 바 있다. ‘바다’는 전쟁이라는 비이성적 운명의 파도를, ‘독약’은 양심과 이성의 마비를 상징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이제 한반도가 ‘바다’에 휩쓸리고 ‘독약’에 마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일영 | 한신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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