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전체가 방황하고 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있지만 나라의 방향에 대한 논의와 정책적 쟁점들은 부각되지 않고 있다. 여권과 야권 내부에서는 벌써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권력투쟁과 이합집산이 한창이다.
여권의 친박·비박 투쟁은 가히 무협 활극을 방불케 했지만, 정작 비전과 정책의 차별성은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 야권을 누비는 김종인 대표의 행보를 보면, 보통 사람들로서는 왜 문재인·안철수 대표가 결별했는지 이유를 찾기 어렵다.
이번 총선의 관심이 대구나 광주에 쏠리고 있는데, 마치 여권과 야권 내부의 대선 예비선거 같은 모양이 되고 있다. 힘이 있어야 일도 할 수 있겠지만, 정책 없는 권력은 또한 빈 수레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번 총선은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비대위를 구성하고 중도보수의 간판으로 급격히 전환하면서 주요 정당 간의 이념적·정책적 차별성은 외면상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아수라장이 된 공천과정에서 각 당은 정책과 비전이 실종되고 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지금은 2012년 총선과 대선 시기에 비해 경제와 안보 상황이 더 나빠졌다.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와 관련한 추상적 담론으로는 정당 간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 총선에서는 지역 수준에서 정책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인의 민심에 다가가는 방안으로, 광역권 정도의 규모에서 정책 쟁점을 중심으로 후보 간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노력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특히 수도권은 비교적 이념과 당파의 편향을 넘어선 선거 구도를 짜기에 유리한 곳이다. 지역차원에서 설득력 있는 발전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경쟁력을 갖추는 길이기도 하다. 이번 수도권 선거에서는 정책연대나 후보연대의 필요성도 높다. 각 당 안에서는 물론 당을 넘어서도, 권역별 도시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선거연대를 시도해볼 수 있다고 본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이 취한 중도보수 전략은 주로 남북·안보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중도층이 이러한 전략을 합리적 방안으로 수긍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북한 핵실험, 개성공단 폐쇄, 국제적인 대북제재 등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남북협력의 대내외적 환경이 크게 악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야권이 집권세력의 강경책을 추종해 북한 ‘붕괴’ 또는 ‘자멸’을 복창하는 것을 신뢰하고 지지할 것 같지는 않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20대 총선 수도권 후보 출정식에서 후보자들과 악수하며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_연합뉴스
남북 간, 미·중 간 갈등이 증폭되면 수도권 경제에 긴축의 효과가 집중된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키 리졸브 연습이 실시되는 동안 북한은 핵탄두 실전배치, 핵탄두 소형화, 탄도미사일 탄두 재진입 모의시험을 언급하는 등 핵위협 수위를 단계적으로 끌어올렸다. 야외 기동훈련인 독수리 연습이 이어지는 동안 군사적 긴장은 계속 높아질 것이다. 군사적 긴장의 압박은 북한의 타격대상이 될 수 있는 수도권에 부담을 가중시킨다.
국제정치 관점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 때문에 대규모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북한 ‘붕괴’에 대한 언급은 국지적 충돌의 위험성을 높이고 특히 수도권에 저성장 기조를 고착화시킬 수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 경제의 취약성으로 공공기관과 가계의 부채 증가와 함께 북한의 체제 붕괴 시 감당해야 할 정부재정 부담을 거론한 바 있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나 급격한 인구이동 가능성은 수도권 지역의 삶의 기반에 대한 엄청난 위협 요인이다.
당분간 남북 교류협력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어려워졌지만, 제재와 적대 정책만으로 수도권의 위험을 덜어주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특히 개성공단 폐쇄 이후 수도권 북부지역은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의 기회가 크게 축소됐다. 수도권 차원에서는 글로벌 평화·성장 도시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남북 간 충돌의 위험을 줄이고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우선 도시 건설 차원에서 한강·임진강을 따라 공공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형성되는 생태적 수변도시 프로젝트를 구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립가공 제조업의 산업도시, 소비형 서비스업의 소비도시의 한계를 넘어서서 1차·2차·3차 산업이 복합된 생활도시를 새롭게 형성하는 노력이 진행돼야 한다.
이러한 시도는 중앙·지방의 정부와 의회, 전문가·시민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혁신’ 실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총선 과정을 통해 이러한 실험의 단초가 새롭게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이일영 | 한신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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