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뉴딜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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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이일영 칼럼

한국형 뉴딜을 준비하자

by eKHonomy 2016. 6. 2.

시중에 비관론이 팽배하다. 최근 만난 지인들 중에 희망적인 전망을 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새로운 형태의 외식업을 시작했던 어떤 이는 내수 침체와 대형 브랜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업을 접었다. 기술기업을 운영하는 친지는 열심히 개발한 기술을 도둑맞고서는, 경제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무너진 도덕성과 무기력한 법치에 대해 절망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IMF 때 못지않게 어렵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경제 지표들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성장률은 1990년대 7%대에서 2000년대 5%대, 2010년대 3%대로 하락했다. 작년 성장률은 2.6%였는데, 금년과 내년에도 2%대에 머무를 전망이다. 잠재성장률 추산치도 낮아져서 한국은행은 2015~18년에 3.0~3.2%로, LG경제연구원은 2016~20년 2.5%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업과 산업부문에서의 구조조정과 퇴출은 벌써 진행 중이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일상적 영업으로는 부채상환이 어려운 부실징후기업 비중이 작년에 36.0%에 이른다. 3년 연속 이자비용을 대지 못하는 만성적 한계기업이 2009년 1851개(8.2%)에서 2014년 2561개(10.6%)로 증가했다.

심화되고 있는 침체 상황에 대처할 리더십을 생각하면 정말 걱정이 된다. 그렇지만 너무 앞서가서 IMF 위기나 대공황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IMF 위기를 겪은 1998년의 성장률은 마이너스 5.5%에 달했다. 이에 대해 자본주의와 재벌체제의 모순을 지적하는 논의도 있었다. 그러나 외환체제가 돌연히 작동 불능의 상태가 된, 말 그대로의 ‘외환위기’의 성격을 직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1930년대 대공황은 전쟁 또는 대지진에 필적하는 재앙이었다. 미국의 산업생산은 1929~32년 사이에 무려 62% 감소했다. 호황기였던 1921~29년에 미국 제조업의 실업률은 7.7%, 경제 전체 실업률은 4.9%였는데, 대공황 시기인 1930~38년에는 각각 26.1%, 경제 전체 실업률은 18.2%에 달하게 되었다. 이쯤 되면 “분노는 포도처럼” 영글어가는 데서 나아가 반란이 폭발할 지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대선 후보가 '창조경제론 스마트 뉴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_경향DB



대공황의 원인에 대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정도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과소소비론자들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지적했지만, 소득분배효과로 인한 수요감소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내구소비재의 수요변동 효과도 생각보다는 크지 않았다. 농산물 등 1차산품 가격 하락이 있었지만 농민들의 피해와 함께 소비자들의 이익이 함께 존재했다.

보다 중요한 원인으로 거론되는 것은 당시 국제통화제도의 취약성이다. 1차 대전을 치르면서 영국은 국제금융질서를 주도할 능력을 잃었다. 분산된 다극화 체제에서 작동하던 신뢰와 협조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국제수지 조정이 어려워졌다. 각국의 긴축적 통화정책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충격을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대공황의 원인으로 대체로 ‘합의된’ 것은 국제적으로 조율되지 않은 ‘잘못된 정책’이다(양동휴 교수).

대공황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나온 것이 케인스주의 정책이다. 대공황은 이전의 자유주의 경제체제와 야경국가를 선호하는 태도를 변화시켰고, 그 이전과는 다른 ‘국가’를 만들어냈다. 대공황을 계기로 정부부문의 비중이 낮았던 미국에서 정부지출이 증대하고 중앙정부로 권력이 집중됐다. 이전의 개인주의·지방주의·자유민주주의가 쇠퇴하는 대신 정부개입과 함께 국민적 결속력이 강조됐다.

현시점에서는 저성장과 침체 현상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한국형 뉴딜 전략의 체계를 가다듬는 것이 시급하다. 여기에는 과거의 경험을 고려한 케인스주의 처방이 필요한 대목도 있고 과거와는 달라진 환경을 고려해야 할 대목도 있다. 세계·동아시아·한반도 체제를 시야에 넣는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형 뉴딜 전략의 첫 번째 기둥은 지정학 전략이다. 현재 저성장은 저출산·고령화, 소득·자산 불평등, 과학기술혁명, 국제정치·경제 관계의 재편성 등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의 교훈은 세계·동아시아·한반도의 협력 질서 구축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두 번째 기둥은 지금까지 사용되지 않은 성장자원을 발굴하고 새로운 규칙·태도를 형성하는 것이다. 미국 뉴딜정책의 핵심은 연방정부를 중심으로 구호·회복·개혁 기능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한국형 뉴딜 전략에서는 새로운 수요처로 북한경제와 광역지역경제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정파와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위기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이일영|한신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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