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돈을 풀어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은 것을 두고 통화정책이 함정에 빠진 것과 같다는 의미로 ‘유동성 함정’이란 용어를 만들어냈다. 경기가 냉각되면서 경기 부양책을 취할 수밖에 없는 정부는 금리를 일정 수준 이하로 내리고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한다. 사람들이 소비를 늘리고 기업은 낮은 금리로 자금을 차입해 투자를 늘릴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최근 물가의 고공행진 위험 속에서도 한국은행이 계속 금리 동결을 하는 취지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경향신문DB
대공황 당시의 미국 경제 환경에 대한 케인스의 진단과 같이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유동성을 공급해도 화폐가 순환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갇혀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 가계부채를 해소하고 재무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소득이 늘어나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유동성 함정에 갇힌 지금의 상황에서는 소득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은행의 행보는 더더욱 우려스럽다. 신규 대출 중단 조치에 이어 기존 대출 회수, 금리 인상 등의 적극적인 신용축소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경기가 지나치게 팽창하면서 자산시장에 거품 조짐이 있을 때 은행은 적극적인 대출 장사를 하면서 자산 거품을 키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부동산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던 2006년에도 새벽부터 아파트 단지에 천막을 쳐놓고 대출 세일까지 하는 공격적인 영업 행태를 보였다.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신용으로 무리한 자산투자를 감행할 때 가계 재무 건전성과 은행의 장기 재정 건전성을 고려해 신용관리를 해도 모자랄 판에 투기적 욕구를 더욱 부채질하기까지 한다. 대표적인 것이 빚도 자산이라는 은행 재테크 전문가들의 선동이다. 저금리 저축 대신 투자 대세론을 앞세워 투자 밑천을 빚으로 마련하라고 주문을 거는 것이다.
그러던 은행이 갑자기 태도를 돌변한다. 바로 지금과 같은 금융위기 위험이 심각한 상태에 치달을 때이다. 대출 이자조차 버거운 가계가 늘어나면서 연체율이 꿈틀거리고, 부채 해소를 위해 집을 팔아치우려 해도 팔리지 않고 가격하락 공포만 늘어나는 바로 이때 은행은 기존의 신용을 늘리는 입장에서 축소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한다.
이러한 은행의 입장변화가 가뜩이나 과도한 부채로 신음하는 가계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몬다. 연체율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자산을 팔아치워 문제를 해결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는 가계 또한 늘어난다. 당연히 부동산 시장에는 매물이 늘고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한다. 부동산 가격 하락은 자산 가치의 변동으로 은행의 대출 회수를 더욱 부채질하게 만든다.
미국의 대공황,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 등 역사적인 금융위기는 바로 이런 악순환을 반복해 자산시장 붕괴가 이뤄지면서 촉발됐다.
하이먼 민스키와 같은 경제학자는 금융위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은행의 이러한 영업행태, 즉 금융 자체의 시스템 위험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진단한다. 가계발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가 날이 갈수록 짙어지는 지금 은행의 대출회수와 금리인상 행위가 위기의 결정적인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따가운 눈총과 만에 하나 위기가 현실이 될 때 은행의 책임을 따져 물을 준비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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