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장수기업’과 ‘부의 대물림’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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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경제와 세상]‘장수기업’과 ‘부의 대물림’ 사이

by eKHonomy 2016. 6. 23.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처럼 우리나라에 코리안 드림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내 집 마련자식들 공부시키기가 아닐까 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이 두 가지보다 더 중요한 인생목표는 없을 것이다. 말로는 소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성취는 좀처럼 쉽지가 않다. 워낙 땅덩어리가 좁은 나라다 보니 내 집 마련의 꿈은 순식간에 부동산 버블로 이어지고, 자식 공부시키기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사교육 열풍으로 나타난다.

 

이 두 가지를 이루고 나면 재산을 모으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된다. 이를 무조건 탐욕이라고 백안시(白眼視)해서는 곤란하다. 정당한 방법에 따라 최선을 다해 일한 결과로 재산이 불어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핵심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이렇게 평생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경향DB

2008년부터 본격 확대된 가업승계 지원제도는 중소·중견기업 기업주들의 상속·증여를 도와주는 제도다. 상속세를 내기에는 돈이 모자라 지분을 팔아야 하겠는데, 그러면 경영권이 불안해져 내가 만든 회사가 남의 손에 넘어갈 게 아니냐며 의욕이 나지 않는다는 중소기업 사장님들의 호소가 많았었다. 가업승계 지원제도는 상속·증여세 걱정을 덜어줄 테니 경제활동에 전념해 달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다.

 

원래는 5년 이상 경영한 중소기업에 1억원을 한도로 상속공제를 해 주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기업 프렌들리를 모토로 삼았던 이명박 정부 첫해(2008)부터 시작하여 최근까지 거의 매년 자격요건이 완화되고 대상 업종과 공제한도액이 대폭 늘어났다. 그 결과 지금은 중소기업뿐 아니라 중견기업까지도 10년간 고용유지 등의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10년 이상 된 기업은 200억원, 20년 이상 된 기업은 500억원의 기업재산을 세금 없이 자녀에게 상속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본인 사망 전이라도 가업 승계에 대한 증여세 과세특례제도를 활용하면 회사주식을 자녀 1인에게 1020%의 낮은 세율로 최대 100억원까지 증여할 수 있다. 증여세 최고세율 50%와 비교하면 대단한 혜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500억원이 어디 적은 돈인가? 일반 개인의 상속세 자녀 공제(1인당 5000만원)1000배가 아닌가? 기초공제 2억원을 합한 25000만원과 비교해도 200배다. 중소기업의 역할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기업재산과 개인재산의 상속에 대한 과세가 이렇게 차이 나도 되느냐는 의문이 들 정도다.

 

여기에 대해 가업승계 지원을 확대하자는 쪽에서는 이것조차 아직 멀었다는 주장이다. 200년 이상 장수기업이 800개가 넘는 독일에서는 가족기업을 상속한 뒤 5년간 회사를 유지하고 일자리와 임금을 줄이지 않으면 상속가액에 상관없이 상속세의 85%를 감면받고, 7년 이상이면 100% 면제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재작년말 독일의 헌법재판소가 이 세제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의회가 일부 납세자(가족기업 상속자)를 다른 납세자(일반인)와 평등하게 취급해야 할 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에 위헌이라면서 2016년 중반까지 세법을 개정하라고 의회에 명령했다. 특전을 누리는 소수에게 부()가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을 막으려는 상속세 기본목적의 가치를 깎아내리면 안된다는 부대의견도 달았다. 이에 따라 지난 월요일 독일 정부는 2600만유로(340억원) 이상의 기업 상속 시 자산조사를 거쳐야 하고, 9000만유로(1200억원) 이상이면 면세를 해주지 않는 등의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 개정안은 다음달 초 의회에 넘겨질 예정이라고 한다.

 

가업승계의 모범사례로 늘 거론되던 독일이 이처럼 방향을 반대로 전환했다면 그 모범을 지향했던 우리도 이제는 가업승계 지원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정 요건만 충족하면 무조건 혜택을 줄 게 아니라, 상속·증여세 낼 돈이 정말로 없는지, 세제혜택이 없으면 정말로 사업을 포기하거나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지, 투자를 미루고 고용을 줄여야 하는지에 대해 국세청이 엄격한 실사를 하도록 해야 한다. 최고 500억원의 공제한도는 대폭 축소시키고, 상속 규모가 큰 경우 혜택을 아예 없애야 한다. 당사자들이야 불만이겠지만, 중소기업을 활성화시키고 장수기업을 키우겠다는 좋은 의도로 출발한 제도가 본의 아니게 ()의 대물림통로라는 오명(汚名)을 얻을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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