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농협은행의 부실이 심각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농협은행의 조선·해운업에 대한 여신은 7조5000억원 규모다. 1분기 말 현재 부실채권은 4조원 수준으로, 산은의 8조6000억원보다는 작지만 수은의 4조2000억원과 맞먹는다. 전체 여신 186조원에서 차지하는 부실채권 비율은 2.15%로, 시중은행의 1% 내외보다 훨씬 높다.
농협은행이 이렇게 된 1차적 책임은 내부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경섭 농협은행장은 최근 “역량을 제대로 갖추기 전에 대기업 여신 등으로 거액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과거의 경영 잘못을 시인했다. 농협 관계자들은 산업 이해도가 낮은 상황에서 외형을 늘리기 위해 무분별하게 여신을 불려왔고, 이를 통제하는 심사나 감리 시스템도 없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 여신 1조5000억원을 ‘정상’으로 분류할 정도니 관리 수준을 짐작할 만하다. 2012년 신용(금융) 사업과 경제(농산품 유통) 사업 분리를 앞두고 금융 부문을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을 것이다.
이경섭 농협은행장_경향DB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 개입의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농협은행은 조선업계 위기 뒤 일부 시중은행들이 STX조선 등의 돈줄을 끊자 이를 대신 메워주는 역할을 했다. 당시 해외 선주들이 국가신용등급과 동일한 등급의 은행 보증을 요구했던 것을 감안하면 국책은행 역할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는 농협은행이 원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해 말 산은이 대우조선에 4500억원을 추가 지원했을 때도 시중은행들은 모두 반대하고 빠져나갔지만 농협은행은 동의하고 대출을 집행했다. 이 역시 자발적 판단으로 보기는 어렵다.
농협은행은 수출 지원을 위한 국책은행이 아니라 농민을 위한 기관을 표방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태껏 정권이나 관의 입김에 크게 영향받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농협은행은 농협중앙회가 100% 지분을 갖고 있다. 농협은행의 지휘권을 갖는 농협금융지주는 관료 출신들이 회장을 맡아왔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에 따르면 STX조선이나 대우조선 지원은 청와대·기획재정부·금융당국이 결정해 채권단에 역할을 통보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국책은행도 아닌 농협은행에까지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지원을 강요했다면 쉬 넘길 일이 아니다. 대우조선 청문회가 열리면 농협은행의 부실 책임도 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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