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청년들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청년모임 ‘더넥스트’와 ‘창비학당’이 함께 진행하고 있는 청년·전문가 토론 모임이었다. 평소 청년들의 입장에 공감하려는 마음을 가다듬었으나, 모임에 참여해보니 아직도 그들 마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싶었다. 세대간에 우정어린 대화와 조언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청년들과의 모임에서 놀란 것은 기본소득에 대한 청년들의 기대가 대단하다는 점이었다. “청년기본소득이란 말을 들으면 가슴이 뛰는가?”하고 물었더니, 서슴없이 “그렇다”는 대답이 나왔다.
기본소득은 불평등을 제거하고 경제시스템을 혁신할 것이라는 기대를 준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일자리는 절박한 문제다. 일자리는 기술발달로 점점 사라지고 있고, 있는 일자리마저 불안정하고 낮은 임금이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더 많아지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실현가능성에 대한 걱정에서 질문을 내놓았다.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속 시원한 대답을 주지는 못했다. “기본소득이 당장 청년들 문제를 해결하는 정답이 될 순 없을 것 같아요. 여러 개의 질문을 시작해보는 출발점이 될 수는 있겠죠.”
살면서 ‘장밋빛 인생’의 꿈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에디트 피아프처럼 인생의 어느 한순간 “그가 나를 품에 안고/ 가만히 내게 속삭일 때/ 나에게는 장밋빛으로 보이지요”라고 노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깊이 공감이 되는 것은 기형도 시인이 우울하게 읊조린 ‘장밋빛 인생’이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면 “그의 남루한 외투처럼/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카락이 드러난” 사내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인생을 사랑할 수도 있고 증오할 수도 있지만, 남루한 외투를 한 번에 벗어젖히기는 어렵다는 점도 받아들여야 한다.
청년들 안에서도 회사 생활에서의 세대간 갈등 경험과 제한된 지불능력이 이야기되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연봉을 더 올려주는 것은 제약이 있고, 인재를 끌어들이고 잡아두는 것도 중요하니 복지혜택 제공이 관건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복지혜택과 관련하여 세대간 태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주니어들은 복지혜택을 권리로 인식하지만, 시니어 세대는 주니어들이 실제로 회사에 기여하는 바가 적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시작된 기본소득 운동의 핵심은 무조건성이다. 이것이 기존의 복지제도나 정책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한국 현실에서는 이러한 무조건성 또는 보편성의 원칙을 글자 그대로 관철하기는 쉽지 않다. 4000만 인구에 연 100만원을 지급하면 40조원이 필요하고, 7000만 인구를 상정하면 70조원이 된다. 한국의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1인당 연간 360만원을 지급하고자 하는 모델을 제시하면서 이에 필요한 추가재원을 181조50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재원이다. 국채를 발행하면 미래 세대를 수탈하는 것이 된다. 세금을 재원으로 삼으려고 하면, 기존 재정지출의 복지 예산 일부를 침식하거나 증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재정수입은 2015년 339조원 수준이고, 저성장 추세의 고착화로 재정수입 증가도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정치와 운동의 주요 과제는 복지나 기본소득 제공을 위한 공유자산 확보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청년들 입장에서는 단기간 안에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통해 억압된 노동의 부담에서 탈출하기는 어렵다. 당장 교육과 주거비용 부담을 줄이는 것이 시급한 문제다. 교육정책과 주택정책에 청년들의 입장을 반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기술실업에 대한 걱정에 앞서 일자리를 만드는 메커니즘을 고민해야 한다. 재벌 대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공급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2015년 GDP 중 제조업 비중은 29.5%였는데, 취업자 중 제조업 비중은 17.3%였다(독일은 22.6%, 19.3%). 이제 과거 국가가 재벌대기업을 도와준 것 이상으로 혁신형 중소기업 발전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산업구조 변화는 고용·교육·주거·창업을 포함한 사회 전 영역과 가치 측면에서 심대한 전환을 가져올 것이다. 청년들이 교육개혁과 주거정책에 개입하고 청년·중소기업을 포용하는 산업·기업 생태계를 형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어떤 공공자산을 마련할까 하는 것이 청년들과 함께 풀어가야 할 핵심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경제와 세상 > 이일영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촛불혁명을 헌정운동으로 (0) | 2017.01.05 |
---|---|
‘박·박 모델’ 대체할 새로운 질서 (0) | 2016.12.01 |
사드 해법, 국가 대전략이 우선이다 (0) | 2016.08.11 |
농업, 경로를 바꾸자 (0) | 2016.07.07 |
한국형 뉴딜을 준비하자 (0) | 2016.06.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