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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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류동민 칼럼

[경제와 세상]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

by eKHonomy 2012. 9. 12.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지나가버린 사랑에 대한 그리움, 그것은 그저 사랑의 그림자, 그러므로 그리움 그 자체에 대한 그리움에 다름 아닐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여기에는 반드시 ‘도착’, 즉 뒤집혀짐이 따라온다. 욕망의 대상과 욕망 그 자체가 뒤섞여 분간할 수 없게 된다. 모든 집착은 오히려 진정성으로 받아들여진다. 더욱 나쁜 것은 이러한 ‘진정성’ 자체에 대한 그 어떤 합리적 의심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도착이 개인적 감정의 문제라면, 그 해결 또한 결국엔 개인의 몫일 것이다. 물론 개인의 문제도 그것을 규정하는 사회관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은 우리가 매일 텔레비전에서 만나는 막장드라마들조차 끝없이 변주하며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심각한 상황은 그 개인이 다른 이들에 비해 막강한 발언 권력을 지니며, 그 욕망이 표상하는 바를 적어도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가 대리 욕망하는 집단적 감정으로 작용하는 경우이다. 그 집단적 감정이 기득권을 가진 세력에 의해 조장되는 것이야 굳이 말할 나위도 없다.


대통령 선거가 어느새 100일 남짓 앞으로 다가온 한국 사회는 매우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정치적 민주주의 발전이 그에 걸맞은 경제민주주의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 지난 이십여년, 구체적으로 1987년의 이른바 민주화 이후의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경제민주주의의 퇴보가 정치적 민주주의조차 위협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경제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 정책 토론회 (경향신문DB)


몰락하는 자영업자의 상당수가 베이비붐 세대라는 최근의 분석은 우리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고도성장을 경험했고, 고등교육 혜택을 누리면서 능력주의 신화의 세례를 받았으나, 이제 능력에 따른 성공은커녕 자녀들에게 ‘88만원 세대’라는 멍에밖에 지워줄 수 없는 세대. 한국 경제의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온몸으로 수행하면서 소규모 자산소유자로서의 계급의식을 지니고 있으나 실상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가까운, 따라서 그 목소리가 배제되어 왔던 계층. 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메시아적 갈망. 이러한 조건은 카리스마를 갖춘 개인에 의한 파시즘이 등장할 수도 있는 물질적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성장과 능력주의의 환상에 대한 그리움은 폭압적 군사정권에 대한 뒤집혀진 향수로 나타나지만, 그것이 권력을 추구하는 개인에게는 ‘아버지’ 콤플렉스와 결합되면서, 그때 그 시절, 기술의 근대성을 압도하고도 남았던 해방의 근대성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유신이 수출확대를 위한 것”이라는 발언이 나오는 맥락은 정확히 이 지점이다.


그러므로 위기란 “옛것은 이미 사라졌으되 새것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라는 누군가의 정의는 현재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유례없이 강력한 제3후보의 존재는 바로 이러한 위기상황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반면, 새것이 오지 않은 위기상태에서 옛것에 대한 도착적 그리움을 이용해 집단감정을 자극하고 타자를 배제하는 정치전략, 그것은 이미 오래전 나폴레옹의 조카라는 어이없는 이유만으로 정권을 잡은 뒤 스스로 황제라고 했던 루이 보나파르트가 고전적으로 작동시켰던 바이기도 하다.


경제민주화가 새로운 권력획득 경쟁에서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던 예상은 절반만 들어맞고 있다. 그저 의미 없는 개념과 이미지로서만 존재할 뿐,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세금을 더 내지 않으면서 어떻게 복지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지, 비정규직 노동이나 자영업의 붕괴현상은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 등의 이슈는 마치 블랙홀 같은 정치공학적 논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으며, 앞으로 남은 석 달 동안 더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옛것을 되살림으로써 위기의 본질을 감추려는 ‘죽은 자의 아들들’(더 이상 생물학적 성은 문제가 아니다!)과 고통스럽지만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를 희망하는 이들의 싸움일 뿐이다. 그러므로, 다시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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