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헌법 가치와 경제 민주화
본문 바로가기
온라인 경제칼럼

[경제와 세상]헌법 가치와 경제 민주화

by eKHonomy 2012. 9. 26.

강수돌 | 고려대 교수·경영학


 

인혁당 사건에 대한 ‘두 개의 판결’ 논란으로 온 사회를 헛갈리게 했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지난 24일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이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때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역사 인식을 바로 해서 다행이다. 


그런데 여기서 ‘헌법 가치’란 무엇일까? 당연히 그것은 ‘민주 공화국’의 가치일 것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며, 따라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 정치가들은 늘 국민을 존중하면서 나라 전체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에게서 나온 권력이 어디로 갔는지 ‘행방불명’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나는 헌법 가치를 세 가지로 압축하라면 주권재민, 행복추구권, 경제민주화라 하고 싶다.


(경향신문DB)


주권재민이야 앞서도 말했듯 단순히 선거할 때 일정 연령 이상 유권자가 투표권을 행사하는 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권력의 원천이므로 그것을 정치가가 대리 수행하지만 결국은 국민에게 되돌려야 한다는 원리다. 그래서 2008년 ‘촛불 시위’ 국면에서 모든 시민들이 노래를 불렀듯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이 주권재민의 궁극적 형태는 시민들이 자기 삶을 직접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일 것이다. 따라서 ‘헌법 가치’를 진심으로 존중한다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의 권력을 갈수록 시민들에게 더 많이 되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늬만’으로 끝난다.


다음은 행복추구권이다. 헌법 제10조에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제2조가 되었으면 한다. 당연히도 ‘모든’ 국민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길 밖에만 나가면 결코 ‘모든’ 국민이 행복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이 장터에만 가면 수많은 인파가 몰려 너도 나도 좋은 사회를 만들어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이를 반영한다. 객관적으로도 20%의 소수가 80%의 부를 차지하는 반면, 80%의 대다수는 20%를 갖고 나눠 먹으려 하니 ‘무한경쟁’ 속에 ‘자기착취’까지 한다. 


그래서 이런 꿈을 꾼다. 행복추구권이 2조 1항이라면 그 2항은 ‘체제 선택권’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개인의 능력에 따라 빈부 격차를 용인하는 체제, 다른 한편으로 개인 능력과 관계없이 두루 고만고만하게 사는 체제 사이의 선택권이다. 이 체제 선택권이 있어야 행복추구권도 실효성이 있지 않을까? 한 체제를 선택한 사람이 굳이 다른 체제를 선택한 사람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강제하지 않는 사회, 그것이 진정으로 행복추구권을 인정하는 사회다. 이 세상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을 뿐,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의 흑백논리는 시대착오에 불과할 뿐이다.


끝으로 경제민주화 조항이다. 지금은 119조에 들어 있으나 나는 제3조가 되었으면 한다. 행복추구권과 체제 선택권이 보장되는 전제 위에서 경제민주화가 실질적으로 구현되어야 비로소 ‘민주주의 공화국’이 되지 않겠는가? 내가 소망하는 경제민주화란 단순히 재벌과 중소기업의 공존, 시골 마을의 도시화, 단편적 복지 프로그램 실시 등을 넘어선다. 참된 경제민주화란 사람들이 경제 활동의 실질적 주인이 되는 것이다. 노동자와 경영자가 지금처럼 나뉘지 않고 ‘통합’되는 것, 회사 대표를 일하는 사람들이 직접 뽑고 결정 과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것, 경영이나 경제 과정을 공유하고 생산, 유통, 분배, 소비 등 모든 과정에서 책임성 있게 행위하는 것 등이다.


박 후보가 기자회견에서 “자녀가 부모의 과오를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마치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는 것”처럼 말한 바 있으나, 나는 자녀가 ‘무조건’ 부모를 존중하는 것과 그 부모의 행적을 공정히 평가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 본다. 오히려 부모의 행적을 올바로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진심으로 그 부모를 존중할 기초다. ‘헌법 가치’의 관점에서 박정희 시대를 평가한 오늘의 박 후보가 대선 결과와는 무관하게 헌법 가치를 참되게 구현코자 노력하는 사람이 되길 빈다. 그래야 지금의 발언이 ‘진정성’ 있는 행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