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지난 23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박근혜의 집 걱정 없는 세상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가계부채와 하우스 푸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나온 첫 번째 ‘종합대책’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 그 자체였다. 아니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우선 치솟는 전셋값에 신음하는 세입자를 대상으로 한 렌트 푸어 대책을 살펴보자. 대책의 핵심은 세입자가 전셋값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집주인이 자기 집문서를 은행에 맡기고 세입자를 위해 대출을 받고, 세입자는 이자만 내라는 것이다. 도대체 어느 집주인이 이렇게 한다는 말인가. 집주인이 이렇게 착했다면 이런 우스꽝스러운 정책을 거론하기 이전에 그보다 훨씬 간단한 전세자금 대출로 문제가 다 해결되었을 것이다.
(경향신문DB)
세입자가 직면한 현실은 차갑기 그지없다. 전세자금 대출을 위한 협조는커녕 전세권 등기를 얻는 것도 쉽지 않다.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 안 받고 전세권 등기로 세사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도대체 어떤 세입자가 1%에 속하고, 어떤 세입자가 99%에 속한단 말인가. 아마도 십중팔구 집주인은 전세보증금 부족분을 당장 월세로 돌리자고 할 것이다. 거기에 대고 집주인에게 “내가 세들어 살고 싶으니, 당신 집문서 은행에 맡기고 대출 받아 달라”고 얘기하란 말인가. 그야말로 “브라우니, 물어!”다.
하우스 푸어 대책 역시 원칙을 위배하고 현실을 무시하기는 마찬가지다. 가계부채 문제의 해결은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모든 손실을 채무자가 부담하도록 하지 말고 ‘차주의 상환능력을 심사하지 않고 무책임한 과잉대출의 책임’을 진 금융기관도 응분의 부담을 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담보대출 지원과 신용대출 지원이 전체적으로 형평을 유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재정지원은 가능한 한 최소화하여 국민의 조세부담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박 후보가 발표한 지분매각 제도는 이런 원칙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금융기관은 지분매각 대금을 받고 이 지저분한 상황에서 깨끗이 철수한다. 설혹 잔존 채무가 남아도 계속 선순위 이자를 받을 수 있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정작 채무자는 거의 모든 손실을 부담한다. 원리금 감면 한 푼 없고, 임대료 명목으로 내는 돈은 정상적인 담보대출 이자보다 더 높다. 왜 그런가. 자산 유동화를 통해 여기에 돈을 대는 투자자들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돈 없어서 허덕이는 사람을 대상으로 발표한 대책이 투자자들 돈 벌어야 하니까 이제까지 가까스로 내던 이자보다 더 높은 이자를 내라는 것인가. 물론 대책 발표문에는 채무자가 이익이라고 버젓이 나와 있다. 연체 이자 18% 안 내고 6%짜리 임대료 내니까 이익이라고 말이다. 지금 이 사람들은 4% 이자 내는 것도 힘들다.
공유지분 주택은 그것 자체로 골치가 아픈 주택소유 형태다. 그런데 공유지분에 담보권 설정하고, 가격하락 시 당초 채무자가 모든 손실을 부담하는 특약을 넣고, 이를 유동화해서 증권 발행하게 되면 복잡성과 불투명성은 더욱 증폭된다. 공적 기관이 신용보강을 해준다는 말은 그래서 들어간 것 같다. 그러나 공적 기관이 과연 어느 정도의 위험을 부담하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대출의 악몽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부분이다.
가계부채와 전세난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역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에서 조금도 자유로울 수 없다. 재래시장을 방문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 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책경쟁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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