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노태우 정부 때의 사건이었다. 북한은 1991년에 나진시와 선봉군의 621㎢를 자유경제무역지대로 공포했다. 나진항, 선봉항과 함께 청진항을 자유항으로 했다. 나선지대에서는 외국인에게 단독으로 기업을 창설할 자유를 주었다. 이어 1993년에 중앙인민위원회의 정령에 의하여 은덕군 원정리가 선봉군에 넘어옴으로써 중국 훈춘의 권하 통상구와 북한 원정리를 잇는 두만강 대교가 나선지대로 들어오게 되었다. 같은 해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을 공포해서, 외국인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뒷받침하는 법적·제도적 조건을 마련했다. 여기서 자유롭다는 것은 관세 면에서는 무관세를 의미했다.
이어 북한은 1995년에 나선지대 해설서를 발간했다. 나선지역을 ‘세계 굴지의 중계무역 중심’으로 되게 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라고 밝혔다. 이러한 일련의 전개가 모두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이전에 일어났다. 개성공단이 가동하기 약 10년 전의 일이다.
객관적 사실이 말하듯이 북한은 폐쇄경제를 지향하지 않는다. 북한 경제는 폐쇄경제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 북한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다른 나라들과 더 많은 경제기술적 협조관계가 필요하다. 이것이 경제를 움직이는 힘이요, 법칙이다. 북한도 이 순리를 따른다. 나선지대가 살아있는 사례이다.
북한은 일관하여 대외경제관계의 확대 발전이라는 필연적 요구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북한은 2011년에 ‘나진선봉경제무역지대법’을 공포했다. 여기에 대단히 중대한 법적·제도적 조건을 창설했다. ‘행정소송’이란 제도를 도입했다. 북한의 사회주의 법률에 행정소송 조항이 들어갔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중국도 1990년에야 비로소 행정소송법을 시행했다. 북한에서도 당장은 경제특구에서만 행정소송이 허용되겠지만 결국은 북한 공민의 보편적 권리로 발전할 것이다. 북한의 행정소송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북한에 투자한 외국인의 권리도 더 두껍게 보호받는다. 이러한 법치의 선순환이 가능하다.
남북통상이라는 실사구시가 필요하다. 남북경제는 ‘퍼주기’가 아니다. 일방적 협력관계가 아니다. 북한에 마치 어떤 폐쇄경제가 존재하는 것처럼 주관적으로 상상하지 않는다. 북한 경제를 변화시킬 새로운 동력을 한국 경제가 외부에서 협력하는 것도 아니다. 노태우 정부 시기 북한의 나선지대 공포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 경제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협력’하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스스로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북한은 2009년에 개정한 ‘부동산관리법’에서 부동산 등록제도를 도입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 공민 개인들을 부동산 이용자의 범위에 포함시켰다. 이는 매우 놀라운 변화이다. 이전에는 기관, 기업소, 단체만이 부동산 이용자의 지위를 가졌다.
남북통상론은 서로의 필요에 의하여 통상관계를 맺는 것을 남북경제관계의 본질로 본다. 한국 경제는 북한의 내수시장, 지하자원, 노동력이 유익하기에 북한과 통상을 하는 것이다. 상호 실리를 추구하는 통상관계이다. 퍼주기가 아니다.
남북통상은 한국이 인도나 중국과 통상을 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한국은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변화시킬 목적으로 인도와 통상을 하지 않는다. 중국과 협력할 목적으로 통상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 유익하기 때문에 통상관계를 맺는다.
남북통상은 어떻게 남북관계 발전에 이바지하는가? 북한의 대외경제관계가 더욱 확대 발전하면 할수록, 더 많은 자유가 필요하다. 동시에 더 많은 자유가 북한 공민에게 보장될수록 북한의 대외경제관계는 발전한다. 나는 이를 ‘법치의 선순환’이라고 부른다. 이를 북한에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법제가 한국이다. 무엇보다도 법의 언어가 같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0년간의 개성공단이었다. 개성공단은 단순한 위탁 가공 사업장이 아니었다. 남과 북의 법제가 만나 새로운 법공동체를 창조한 법적 공간이었다. 북한은 이미 1991년에 제시한 나선지대 모델을 2004년의 개성에서 처음 실현해 볼 수 있었다. 북한은 세금, 회계, 노동, 환경 규정 등 자유무역지대 운용에 필요한 일체의 법적·제도적 조건을 개성공단에서 한국의 법률가들과 같이 만들고 적용했다. 그리고 이 경험을 ‘나진선봉경제무역지대법’에 반영했다. 남북통상은 법치의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법치는 도착하는 시간은 달라도 끝내 도착하게 되는 종착점과 같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보편적 요구이다. 북한에 장마당이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자유를 보장하지 않으면 안된다. 돈주가 북한 경제에 더 많은 이바지를 하면 할수록 개인들의 부동산 권리를 더 많이 보장해야 한다. 북한 스스로가 필요한 이 법치의 과정을 남북통상을 통해 더 잘해낼 수 있다. 이미 약 30년 전에 북한이 나진·선봉 지구를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선포한 역사적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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