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한 금융시장과 탐욕스러운 투기로 요동치는 자본주의를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카지노판에 비유한다. 카지노자본주의가 나쁜 이유는 정당한 노동 없이 큰 수익을 노리는 탐욕에 대한 보상, 불로소득이 세상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경제의 기초체력을 좀먹기 때문이다. 투기와 탐욕이 도를 넘어 세계 경제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인간 진보에 기여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퇴화한다고 무함마드 유누스를 비롯한 많은 현인들이 경고한다. 토마 피케티는 선진국들이 세습자본주의화돼왔고 손쓰지 않으면 이런 경향은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자본의 비중은 커지고 노동은 작아져 노력해서 번 재산보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사회계층화가 공고해진다는 얘기다.
그 누구나 정당하게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무얼까? 그런 사적 소유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오나? 그것은 바로 자신의 몸과 노동으로 얻은 것일 테다. 이런 사고는 분배 정의의 자연스러운 출발점이다. 과거 많은 사상가가 그렇게 생각했고 민주주의의 가치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상식과 같은 것. 19세기 미국의 경제사상가 헨리 조지는 이런 사고를 바탕으로 당시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친다. 그가 저술한 <진보와 빈곤>은 성경과 함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도 유명하다. 모든 부는 노동과 토지(자연의 힘)의 결합으로 생산되지만 그는 오직 노동만이 정당한 소유권을 결정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토지는 만인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공공자산이고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 이런 토지를 소유하기 때문에 빈곤이 발생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지소유에서 발생한 지대를 100% 환수해 공공을 위한 정부재정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헨리 조지를 기억하는 사람 대다수가 이런 그의 급진적 토지세와 공공자산으로서의 토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가 극단적 자유방임론자였고 그래서 다른 모든 과세는 철폐해야 한다고 했던 것은 잘 기억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단일 토지세론보다 현대사회에 더 묵직한 한 방을 날리는 것은 그의 정치경제학 밑바탕에 흐르는 자연정의론적 세계관이다. 그가 정치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면 그의 정치경제학에 있는 자유방임론적 요소를 상당부분 포기했을 것이다. 소유권의 유일한 원천인 노동에 공정하게 보상하는 평등한 사회만이 발전을 지속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회는 탐욕과 불로소득에 대한 투기로 쇠퇴한다는 것이 그가 말하는 인간진보의 법칙이다. 토지에서 발생한 모든 지대를 과세로 환수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불로소득으로 인해 노동에 대한 착취와 빈곤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것. 지대추구가 만연할 때 사회는 노력하지 않고 탐욕을 추구하는 사회로 변질되어 쇠락한다. 이처럼 그는 인간 진보의 기본원리를 평등한 개개인들의 자유로운 연합에서 찾았다. 그가 말하는 평등은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다. 이런 헨리 조지의 자연정의론은 카지노자본주의와 세속자본주의를 경계해야 할 이유를 정확히 짚어준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인간 진보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불굴의 의지로 전 국민이 허리띠 졸라매며 기적 같은 고도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카지노자본주의와 세습자본주의의 그늘 역시 짙다. 다른 나라 몇 배 규모의 거대한 부동산시장이 카지노자본주의의 중심부에 있다. 전세 낀 갭투자에 대출지원까지 동원해가며 입장시켰다. 그래서 늘어난 가계부채만큼 판돈은 커졌고 불로소득도 어마어마해졌다. 이 시장의 가장 큰 희생자는 주거 불안정과 비용으로 고통 받는 세입자들이고, 가장 큰 수혜자는 재벌과 대기업을 필두로 한 부동산 자산가, 잇속 밝은 강남 부동산 유지, 똑똑이 엘리트, 그리고 이 카지노장을 관리하며 사익추구에 혈안이 된 나쁜 관료와 정치인들.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것보다 부동산을 통해 돈 버는 사람이 부러운 사회, 탐욕을 숭상하고 최고급 외제 차에 명품으로 부리는 허세가 품격이 된 타락한 문화가 일상이 된 사회, 이것이 지금의 우리가 향해가는 사회다. 온 국민이 피땀 흘려 키워낸 기업이 재벌가의 기업경영권 세습에 동원되고, 그렇게 편법, 탈법, 불법으로 시장을 분탕질해도 처벌도 못하고, 분노할 줄도 모를 만큼 이 사회는 타락했다.
헨리 조지의 현명한 통찰처럼 이런 타락의 뒷면엔 항상 노동에 대한 멸시가 있고 착취와 빈곤, 불평등이 있다. 최악의 산업재해 공화국이란 오명, 최장시간 노동과, 극심한 노동시장 양극화가 바로 이 사회가 노동을 대하는 태도다. 신성한 노동으로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대다수의 생산직, 사무직, 교육, 의료,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묻는다. 왜 분노하지 않는가?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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