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재난기본소득보다 재정확장이 우선
본문 바로가기
경제직필

[경제직필]재난기본소득보다 재정확장이 우선

by eKHonomy 2020. 3. 12.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 우려에 주가가 폭락한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주식중개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코로나19가 할퀸 상처가 너무나 깊고 크다. 시끌벅적하던 식당, 커피숍, 마트, 영화관, 공연장, 관광지 등에서 사람들이 사라졌고, 공장들은 멈춰섰으며 회사들은 무급휴직 권고와 인원감축을 하고 있다. 이참에 “한 석 달 정도는 푹 쉬자”고 말하는 한가한 사람들도 있지만, 한계적 상황에 내몰린 소상공인이나 일용직 노동자들은 보름만 쉬어도 나락으로 떨어진다. 3월에도 바이러스의 확산세가 꺾이지 않는다면 감염보다 오히려 경제적 곤란 때문에 더 많은 생명들이 희생당할까 우려스럽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방안으로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시민들에게 현금을 직접 지급하면 최소한의 생계비를 제공해줄 뿐 아니라 소비가 진작되니 경기회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본래 의미의 기본소득은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보편적’ 복지제도의 일환이다. 하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재난기본소득의 대부분은 ‘한시적으로’ ‘특정지역이나 계층에’ 현금을 지원하는 방안으로 기본소득이라고 하기보다는 ‘현금수당’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보편적 기본소득의 생산적 논의를 위해서는 재원 마련 방안과 현존 복지제도 개편 방안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는 중장기적 과제로 검토해 볼 수는 있어도 시급성을 요하는 현 단계 대책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처럼 하늘에서 돈을 뿌리는 정책으로는 공급 측 경제충격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 코로나19가 경제적으로 심각한 이유는 시장의 공급과 수요 양쪽 모두에 충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노동력의 손실, 원자재 확보의 어려움, 교통의 마비, 불확실성으로 인한 투자부진, 공장의 가동중단 등은 공급 측에 가해지는 충격이다. 반면 소비 위축, 미래 불확실성으로 인한 구매 연기 등은 수요 측에 가해지는 충격이다. 경제위기의 주범이 수요 측 충격이라면 통상의 경우에는 현금을 뿌려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증가시키는 것이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지금의 소비위축은 ‘사회적 거리 두기’에 기인한 바도 커서 효과가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현금수당을 늘린다고 공장가동 중단이나 폐업을 막을 수도 없다. 재난기본소득이라는 하나의 돌로 수요와 공급이라는 두 토끼를 동시에 잡기는 어렵다. 


현재 상황에선 다양하면서도 적극적인 재정확장을 통해 공급 측 충격과 수요 측 충격에 ‘선별적으로’ ‘신속히’ 대응하는게 최선의 방법이다. 이번 11조7000억원의 정부 추경예산안에는 공급 측 요인과 수요 측 요인에 선별적으로 대응하려는 고심이 엿보인다. 하지만 현재의 추경안에는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현재의 추경안은 공급 측 충격과 수요 측 충격에 모두 대응하기엔 액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국회 논의과정에서 증액하거나 추가적 추경 편성을 통해 재원을 더 늘려야 한다. 이미 금리가 낮기 때문에 통화정책엔 한계가 있고 따라서 현재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수단은 재정정책이 거의 유일하다. 당분간 재정적자가 일시적으로 늘어도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재정을 쏟아부어야 한다. 재정건전성이라는 시대착오적 이데올로기를 버려야 한다. 


이번 추경은 금융지원과 세제지원이라는 간접지원 방식 위주로 되어 있는데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 직접지원 방식이 예산도 덜 들고, 기존의 보조금 전달체계 활용이 가능해 신속히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 추경안을 보면 취약계층 580만명에게 상품권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상품권보다는 현금 지급이 훨씬 바람직하다. 현금은 안 쓰고 묻어둘 수 있다는 우려에서 상품권을 지급하려는 것 같은데 보름도 견디기 힘든 취약계층들이 현금을 묻어둘 여유는 없어 보인다. 


착한 임대인정책의 경우엔 정책변경이 요구된다. 현 방식은 임대료 수준이나 임대료 인하 액수와 상관없이 임대료 인하분의 50%를 세액공제해 주는 것인데 비싼 임대료를 내는 고급빌딩의 임대차계약에까지 정부가 지원해줄 필요는 없다. 또 임대인 위주의 세액공제보다 임차인 중심의 세액공제가 더 바람직하다. 


중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의 장기침체에 대응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는 그러잖아도 저성장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계 경제에도 엄청난 충격을 가하고 있다. 이 상황이 현재의 불안정한 금융시장과 결합하여 금융패닉이라도 나타나면 세계는 심각하면서도 장기적인 경제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신 뉴딜)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