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한국 제조업의 생존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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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경제직필]한국 제조업의 생존 조건

by eKHonomy 2019. 5. 16.

영화 <바이스>가 있다.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을 소재로 했다. 부시 대통령이 1999년 대통령 선거에 나가면서 딕 체니에게 부통령으로 함께 출마해 주기를 간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체니는 외교와 국방 등에서 중요한 결정을 단독으로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부시에게 요구한다. 


미국 헌법에 근거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부시는 동조한다. 그리고 체니는 법 위의 권력자가 된다. 법조차 제 입맛대로 해석한다. 부통령은 입법부에도 행정부에도 속하지 않는 ‘제4부’라고 강변한다. 장막의 권력자들은 2002년에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부르고, 2003년에는 이라크전쟁을 주도한다. 더 말할 필요가 없이, 북한은 9·11테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리고 이라크에는 대량 살상무기가 없었다. 미국 정치에서 ‘견제와 균형’이 법전에나 있는 미사여구가 되는 동안, 세계는 미국의 ‘네오콘’에 의해 고통을 받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체니와 다른 대표적인 점이 국제 통상이다. 네오콘은 미국 기업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사업하는 것을 미국이 세계의 유일 강대국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9년 퇴임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보호주의로 간다면 큰 잘못이라고 말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 의회에서 비준을 받지 못한 점을 매우 아쉬워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다르다. 미국 기업의 글로벌 비즈니스를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 핵심적인 요소로 보지 않는다. 미국 애플사가 중국 공장에서 만든 아이폰의 가격이 크게 올라 세계 시장 경쟁력에 큰 문제가 생기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매긴다. 체니가 지난 3월 미국 기업연구소가 주최한 포럼에서 트럼프 외교를 신랄히 비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는 오바마 행정부가 공들여 체결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다. 그가 한·미 FTA를 실제로 폐기하려고 생각했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이번주에 중국에 미국 무역법 301조를 적용하여 25%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WTO를 통하지 않은 일방적 보복을 WTO는 금지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태연스럽게 트위터에 “관세를 피하는 쉬운 방법? 미국에서 제품을 만들면 간단히 해결된다”라고 썼다. 


미국 정치에서 트럼프는 무엇인가? 그 특성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그는 네오콘과 같이 체계화된 개념을 시도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을 열렬히 지지하는 미국 내 집단을 열심히 대변한다. 그에게는 체니가 열심히 ‘제4부’라는 논리를 만들었던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대신 그를 가장 열심히 지지하는 제조업 백인 노동자의 이익이라면 바로 행동하고 앞장선다. 외국산 자동차가 미국 안보를 위협한다며, 25% 관세폭탄을 터뜨릴 수 있다는 노골적 안하무인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규칙을 찾지 않는다. 


문제는 한국의 제조업이다. 당장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트럼프 정치로 큰 위기를 맞았다. 어떻게든 25%의 자동차 관세폭탄을 피해야 한다.


체니든 트럼프든 그들의 안색을 재빨리 살피는 것 외에, 제조업의 생존 조건을 우리 안에서 만들어야 한다. 안으로는 지속 가능한 제조업 틀을 만들어야 한다. 경북 구미형 일자리가 의미가 크다. 임금을 삭감하는 모델 대신 지역 임금을 적정하게 유지하고 주택과 교육비를 노동자에게 지원하는 사회적 제조업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남북 경제 통합에 쏟아야 한다. 남과 북의 인구를 합해 7000만명이 넘는 중규모 내수 시장을 가져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이른바 ‘좌파독재’ 투쟁이 얼마나 낙후되고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국민경제를 생각하는 야당이라면 개성공단 기업의 공장 방문을 지지해야 한다. 제조업이 국민경제 안에서 숨 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일방주의를 견제할 안정적인 다자주의 국제경제 질서를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164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WTO 안에서 한국은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 편승하거나 치우치지 않은 한반도 경제가 모델이 될 수 있다. 동북 아시아 및 아세안과 함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국제통상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이 점에서 한국을 포함한 16개 나라가 현재 추진 중인 역내 포괄적동반자협정(RCEP)이 매우 중요하다. 그 성공을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노력해야 한다. 


체니와 트럼프가 바라보는 국제 통상은 우리와 다를 수 있다. 이 명제를 이제는 정립해야 한다. 우리 앞에 체니가 있든, 트럼프가 있든, 그 누가 있든 가야만 하는 길이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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