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려면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한다. 아무래도 남과 비교하면 불행하다고 느끼기 십상이다. 연구에 의하면, 한국인은 뇌과학적으로 다른 나라 사람보다 남들과 비교하는 데 더 예민하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한국인들은 누리는 경제와 문화 수준에 비해 대체로 자기 삶에 대한 만족감이 낮고 행복지수가 낮다. 그런데 웬일인지 우리나라의 경제성적표라 할 거시경제지표는 ‘남’과 잘 비교하지 않는다.
경제가 갈수록 어렵다.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지속된 최저임금 부담과 미·중 무역갈등 등 대내외 여건에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 경제성장률과 고용률 등 경제상황을 설명해주는 각종 지표들도 내리막이다. 일각에선 디플레이션 공포와 경제위기론까지 들먹인다. 과연 한국 경제는 소망 없이 늙어만 가는 걸까?
한국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짧은 기간에 경제부흥에 성공한 나라이다. 반세기 전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에 머물던 세계 최빈국이 3만달러가 넘는 부국이 되었고 반도체와 인터넷 통신 등 IT 첨단산업에서 세계를 이끌고 있다. 게다가 국민의 강한 민주주의 의식과 열망 덕분에 아시아 주요국 중 거의 유일하게 경제발전에 민주주의까지 조화시켰다.
100여년 전 김구 선생이 한없이 갖고 싶어 했던 ‘높은 문화의 힘’도 이뤘다. 한국말로 노래하는데도 세계인의 정신세계를 이끄는 젊은이들이 나타났고 세계적인 영화와 음악 콩쿠르 무대에서 수많은 입상자가 끊임없이 배출된다. 세계인들은 갈수록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한국과 한국인의 역동성과 창의력에 경이로운 시선을 보낸다.
그런데 지금 한국민은 팍팍해진 삶과 암울한 미래가 걱정이다. 이 불황증후군은 대부분은 힘겨운 체감경기 탓이지만, 언론과 재계에서 지속적으로 쏟아내는 빨간색 경제진단과 전망도 일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권위 있는 국제기구가 발표하는 각종 경제지표도 빠짐없이 동원된다.
며칠 전 언론들은 ‘OECD,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 2.4→2.1%로 또 하향조정’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세계 경제전망을 내놓으면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작년 11월 2.8%, 지난 5월 2.4%에 이어 다시 2.1%로 하향전망했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미·중 무역갈등과 경기침체로 인한 하방 위험으로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세계 경제성장을 전망하면서 G20 주요국들에 평균적으로 올해 0.3%포인트, 내년 0.4%포인트씩 낮춘 것인데, 다른 나라는 거의 언급 없이 한국만 거론하니 마치 한국 경제만 나빠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반대다. OECD는 내년 경제성장률의 경우 G20 국가 중 인도 등 신흥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올해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면서도 거의 유일하게 한국에 대해서는 대규모 확장적 재정정책 덕분에 올해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사례는 국제기구와 정부에서 발표하는 경제성장률·수출증가율·고용률·실업률 등 각종 경제지표가 국민에게 전달되는 경로와 형식을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현재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경쟁 상대인 선진국 등 ‘남’과 비교하는 것을 고도성장기나 개발도상에 있던 ‘과거’와 비교하면서 최악의 성적표로 돌변한다. 한국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7%를 기록했고 올해는 2.3%(OECD)를 전망하고 있는데, 과거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지금 G20 국가 중에서는 신흥국을 제외하고 가장 높다. 특히 경제전쟁 중인 ‘아베노믹스’ 일본의 성장률이 지난해 0.8%, 올해 전망이 1%이고, 세계적인 경제모범국 독일은 지난해 1.5%, 올해 전망이 0.5%이니 우리나라와 ‘더블스코어’ 차이인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우리가 아는 정보와 우려와 달리 한국의 경제성적표는 ‘남’과 비교할 때 더 두각을 보인다. 현실을 직시하거나 미래를 대비하는 데 소홀해선 안되지만 애써 부정적 인식에 빠지면 한국 경제에 대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글로벌 경제침체 속 사력을 다해 한국 경제를 살리는 데 참여한 정부, 기업, 가계 등 각 경제주체가 이룬 결과물인 경제지표가 왜곡되어 자국 경제에 대한 자부심과 혁신성장 등 경제할 의욕조차 잃게 할까 우려스럽다.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각종 거시경제지표는 정책 수립 목적이 아닌 한 과거의 나와 비교하는 것보다 현재의 경쟁자들과 비교해줘야 제격이며 공정하다. 성적표가 좋든 나쁘든 학생의 자만이나 좌절용이 아닌 동기부여용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구재이 | 납세자권리연구소장·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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