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사태,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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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정대영 칼럼

그리스 사태, 남의 일이 아니다

by eKHonomy 2015. 7. 8.
그리스 사태가 국민투표 결과 채권단의 긴축안이 거부됨으로써 혼돈 속에 빠져들고 있다. 그리스가 빚을 많이 탕감받아 살기가 나아질지, 유로존을 탈퇴하여 유럽의 변방으로 남을지 현재로서는 알기 어렵다. 그리스 사태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도 앞으로 사태의 확산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한국은 1997년 IMF 사태라는 엄청난 외환위기를 겪었다. 그리스 사태의 본질을 잘 짚어보고 대비할 것은 미리 대비해야 한다.

먼저 그리스 사태는 대표적인 재정위기로 세금이나 국채 등의 정상적인 재정수입으로 공무원 봉급 등의 재정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 국가부도 상황에 이른 것이다. 재정위기도 다른 위기와 같이 과다 부채가 핵심 원인이다. 부채가 늘어난 원인으로 한쪽에서는 방만한 복지지출을, 다른 쪽에서는 정부의 무능과 부자들의 탈세를 지적하고 있다. 양쪽 다 원인이지만 유럽의 평균적인 기준에서 볼 때 정부의 무능과 탈세의 비중이 더 클 것 같다. 그리스의 전체 복지 수준은 유럽에서 뒤떨어진 상태이고, 탈세와 부정부패 등으로 인한 지하경제의 비중은 아주 높은 수준이다. 그리스는 부유층의 탈세가 일반화되어 그리스 의사들이 독일 청소부보다 세금을 적게 낸다고 한다. 독일 세무공무원을 그리스에 파견하여 세무행정을 혁신하면 그리스 재정위기는 쉽게 해결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다음으로 그리스가 유로라는 유로존의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것도 재정위기의 원인이다. 그리스는 유로를 사용함으로써 물가가 안정되고 외환위기의 위험성이 없어졌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독자적인 금리정책과 환율정책을 할 수 없고, 재정위기 가능성은 커졌다. 유로화의 금리와 환율은 그리스 경제상황이 아니라 유로존 전체의 경제상황에 따라 조정된다. 그리스는 자국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을 때 대응 수단이 임금조정 외에는 없게 됐다. 여기에다 유로를 쓰는 나라는 정부가 중앙은행으로부터 직접 차입할 수 없게돼 있어, 재정상황이 나빠지면 쉽게 위기로 이어진다. 즉, 조세수입이 부족하면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국채가 시장에서 팔리지 않으면 부족한 재정을 충당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시장의 급격한 변심도 그리스 재정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 그리스가 2000년부터 유로를 사용하고 유로화로 표시된 국채를 발행하자 투자자들이 몰렸다. 과거 드라크마로 표시된 그리스 국채는 계속된 환율 상승으로 손실이 발생했으나, 유로화 표시 그리스 국채는 환율변동 위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금리가 높아 안전해 보이는 고수익 상품이 된 것이다. 그리스 국채는 2007년까지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서로 사려고 하는 인기 투자상품이었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투자자들의 생각이 갑자기 바뀌었다. 환율변동 위험은 없지만 재정상황이 나쁜 그리스가 국채를 제대로 상환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스 국채가 상환 능력을 의심받고 시장에서 외면받게 되자, 그리스는 재정위기 상황에 빠져 IMF 등의 구제 금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디폴트 시 한국 경제 영향 _경향DB


이런 그리스 사태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은 어떤가? 1997년 IMF 사태는 기업 부문의 과다부채와 이에 대한 금융기관의 위험관리 실패가 핵심 원인이다. 부문은 다르지만 그리스 사태와 같이 과다부채가 위기의 원인인 것이다. 지금 한국은 하우스푸어로 대표되는 가계부채가 오래전부터 위험 수준에 와 있다. 저금리와 집세 인상,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 덕분에 문제가 표면화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 이후 계속되는 재정적자로 인해 정부부채는 늘고 있다. 재정적자나 정부부채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크게 다르다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아직 양호한 상태라 하고 일부 학자는 이미 위험한 수준에 와 있다고 한다.

시장상황이나 경제환경은 항상 바뀐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저금리 정책을 지속할 수 없고, 고령화와 지방이주 증가로 주택 수요가 줄 수 있다. 그리스 사태에서 보듯 해외투자자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급변할 수도 있다. 한국은 금융과 실물 면에서 대외의존도가 아주 높다. 그리고 부정부패와 정부의 무능, 부유층의 탈세도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위기는 언제 어떤 형태로 올지 모른다. 기업, 금융기관, 가계, 정부 등 경제주체가 건전해야 위기의 충격이 작고 극복도 쉽다. 각 경제주체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이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위기 대비의 기본이다.

정대영 | 송현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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