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새로운 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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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

금융위기의 새로운 역학

by eKHonomy 2022. 10. 20.

물가 고공행진에 맞선 글로벌 차원의 공세적 통화긴축 행보로 국내외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충격의 향배조차 아직 시장 반응이나 정책 행보에 온전히 소화되지는 못한 모습이다.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 아니 20세기 초 국제질서의 붕괴와 같은 아마겟돈의 그림자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낸 ‘국제금융안정보고서’에서 ‘고인플레이션 환경 헤쳐가기’를 주제로 제시했다. 인플레이션 고착화를 방지하기 위해 고강도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그로 인한 금융 안정상의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IMF는 시장유동성의 위축에 주목한다. ‘시장유동성’은 주로 중앙은행의 통화 공급에 의존하는 ‘화폐유동성’과 달리 금융시장에서 자산 매매의 용이성을 의미한다. 사실 코로나19 초입에서 나타났던 격렬한 금융시장의 발작은 이와 같은 시장유동성 증발 영향이 컸다. 대체로 시장유동성은 특정한 충격이 금융시장 전반에 광범위하게 증폭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IMF는 이와 관련해 몇 가지 구조적 변화에 관심을 환기시킨다. 우선 자본규제 강화로 인해 은행권의 시장 조성자 역할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대형 은행들은 시장 경색이 초래될 때 반대매매를 통해 시장을 지탱하는 역할을 수행하곤 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규제가 강화되면서 그 역할이 위축되고 있다. 둘째는 기술혁신인데, 은행권의 역할이 위축된 대신 주로 알고리즘에 기반한 비전통적인 금융회사들이 시장 조성자로 나서고 있다. 이러한 알고리즘은 변동성이 확대될 때 자동적으로 시장 탈출을 도모하면서 유동성 불안을 더욱 부추기게 된다. 나아가 ETF와 같은 패시브(지수 추종) 투자자들의 성장도 시장 쏠림 현상을 자극함으로써 그 취약성을 가중시킨다. 

금융위기의 교훈에 기반해 은행권의 레버리지를 규제한 결과, 또 기술혁신과 안정적인 투자관리 노력 등이 역설적으로 자본시장의 리스크를 키운 셈이다. 따라서 이제 시스템 리스크의 무게중심이 은행이 아니라 자본시장으로 옮겨갔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리스크의 파괴력이나 확산력은 상대적으로 억제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령 20년래 최고 수준의 ‘킹달러’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제적으로 달러 유동성 시장의 불안은 코로나 발작기를 크게 하회하고 있다. 주된 충격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따른 시장금리 급등, 자금조달 비용 상승에 따른 주식 등 위험자산의 밸류에이션 재조정에 집중되고 있다. 국내에서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필요성에 대한 회의론에는 이런 이유도 일조할 것이다.

시스템 안정의 핵심인 은행권의 여건은 비교적 양호하다. IMF가 위기 상황을 가정하여 실시한 글로벌 은행 스트레스테스트(28개국 262개 은행 대상)에 따르면, 은행권의 보통주자본비율은 2021년 14.1%에서 2023년 11.4%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나 글로벌 주요 은행(G-SIB) 중 최소자본비율 4.5%를 하회하는 곳은 없다. 물론 신흥시장은 은행 자산 중 29%가량이 이를 밑돈다. 그러나 여기서도 지역별 차이는 커 보인다. 그 결과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진 않지만, 금융시장의 위험 지표들을 보면 아시아 지역은 대체로 양호하고 중남미나 중동부 유럽 위주의 이른바 ‘프런티어 마켓’ 지역이 취약한 모습이다. 

하지만 진짜 위험은 시장유동성이나 금융불안에만 그치지 않는다. 특히 부동산 광풍은 우리만이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진행되면서 격렬한 조정 압력을 낳고 있다. 또 코로나19 영향에 여전히 시달리는 중소기업은 물론, 경제 재개에 힘입어 수익성이 강화되던 대기업들도 최근에는 임금이나 비용 상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유동성을 넘어 신용건전성에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시점이다. 나아가 공세적 긴축에 따른 경기침체 위험이나 지정학적 갈등 심화와 맞물린 국제공급망의 무질서한 재조정 위험은 그 부담을 더욱 가중시킨다. 금융위기의 역학 변화와 맞물려 더욱 심각한 도전들이 부상하고 있다. 그 종착역은 과연 어디일까?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연재 | 경제와 세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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