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위기 시대와 회복탄력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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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

복합위기 시대와 회복탄력사회

by eKHonomy 2022. 8. 25.

코로나19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공급망 차질과 에너지난 등 온갖 불확실성이 중첩되면서 이른바 복합위기가 도래하고 있다. 본래 위기가 끔찍한 것은 그 충격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하곤 하는 탓이다. 지금도 코로나19에 맞선 대규모 경기부양책에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공급 차질이 맞물리면서 고강도 인플레이션이 빚어지고 있고, 또 이에 맞선 공세적 금리 인상, 게다가 그 여파로 경기침체 위험이 뒤를 잇는 상황이다. 아울러 코로나19라는 자연재해 충격은 더욱 본질적인 기후변화의 위험을 절감케 하며,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각국 간 갈등은 이미 그 이전부터 들끓던 국제적 긴장을 한층 증폭시키고 있다.

세계적 경제석학인 마커스 브루너마이어 교수(프린스턴대학)는 최근에 국내 번역된 <회복탄력 사회>를 통해 복합위기의 시대에 ‘회복탄력 사회’라는 처방을 제시한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설계할 길잡이로서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주목한 것이다. 회복탄력성은 충격 이후에 다시 일어서는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위기를 막아낼 ‘견고성’에 집착한다. 하지만 브루너마이어 교수는 ‘떡갈나무와 갈대’의 비유를 댄다. 견고한 떡갈나무는 웬만한 강풍도 견뎌내지만 정작 태풍 같은 거센 충격에 직면하면 부러진다. 반면에 갈대는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지만 태풍이 불어도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속성을 지닌다.

이처럼 갈대와 같은 회복탄력성은 원상 복귀 능력을 중시하는 ‘안정성’ 개념도 넘어선다. 안정성은 주로 일상적이고 사소한 충격에 국한되는 반면, 회복탄력성은 견고성의 벽을 뚫고 들어오는 충격도 받아들인다. 사실 때로는 위기를 아예 회피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르더라도 위기를 감내하는 편이 낫다. 위기는 평소에 필요하던 조정을 실행에 옮길 기회이기 때문이다. 조정이 없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불균형이 누적되고 그만큼 위기는 더 심각해진다. 반대로 소소한 위기에도 회복력이 좋다면 사회는 한층 강화된다. 이런 현상을 ‘변동성 역설’이라고 한다. 변동성이 매우 낮은 상황일수록 가장 조심해야 할 때다.

물론 회복탄력성에도 대가가 따른다. 회복탄력성은 위기 충격을 완충할 수 있는 ‘가외성’(redundancy)을 필요로 하는데, 그런 만큼 효율성이 희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업이나 국가 경영, 국제무역 등의 영역에서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적기대응 전략’이 각광받아왔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 위기, 나아가 각종 지정학적 갈등과 같은 불확실성의 심화는 ‘비상대응 전략’의 상시화를 요구한다. 단기적인 비용편익 측면에서는 부담이 크겠지만, 기업이나 사회,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장기적인 유연성이나 회복탄력성에 더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브루너마이어 교수는 회복탄력성이 지속가능성의 필수요소라고 진단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회복탄력성을 담보할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사회계약은 과거 근대화 과정에서 개인과 사회, 국가 간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의미하던 개념인데, 주로 사회 구성원들 간의 부정적 상호작용(외부효과)을 억제하고 외부 충격에서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여기서 그는 상황변화에 따라 회복탄력적인 방식으로 사회계약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 사회적 규범, 시장 등 3가지 접근방식들을 균형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소 개방경제로서 우리는 늘 외풍에 시달려왔다. 게다가 코로나 위기를 거치면서는 우리 사회에 내재한 취약성이나 불균형의 민낯도 드러나고 있다. <회복탄력 사회>의 한국판 감수자의 고백처럼 “앞만 보고 달리면 됐던 과거에 비해 우리가 마주하는 불확실성이 너무 크게만 느껴진다”. 당장의 위기관리나 민생안정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회복탄력성을 제고할 새로운 사회계약의 설계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연재 | 경제와 세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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