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자동차 업계의 침체가 심상치 않다. 대표적인 국내 자동차 회사인 현대자동차 그룹의 경우, 세계적 자동차 시장 내에서의 위치가 추락하고 있다. 작금의 사태에 대해 언론 및 업계 당사자들은 편향된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직원들의 고임금과 강력한 노조에 의한 비효율적 생산성 이슈에서 원인을 찾고 있으며, 심지어는 이 때문에 생산 공장을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진부한 논의를 그만두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임금과 노조라는 이슈가 지난 수십년간 존재했음에도 과거의 성공을 막은 요인이 아니었듯이 지금의 위기상황에서도 직접적인 부진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이젠 기업의 개발전략이나 혁신 문화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때가 온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국내 자동차 업계는 지금까지 눈부신 성장을 이룩해왔다. 그들은 정부와 언론들이 제공하는 우호적인 산업환경 속에서 경쟁사 대비 고품질을 지닌 차량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는 전략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러한 구시대의 성공 방정식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즉 국내 자동차 회사의 차량이 팔리지 않는 이유는 가격경쟁력의 하락 때문이 아니라, 갖고 싶지 않은 차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내 차량 제조사들은 왜 갖고 싶지 않은 차를 만들게 되었을까?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의 1심 선고가 내려진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기아자동차 본사. 이날 열린 1심 선고에서 법원은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에게 지급된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며 사측이 근로자들에게 3년치 4천223억원의 밀린 임금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연합뉴스
필자는 국내 자동차 회사가 부진한 근본적 원인을 크게 두 가지 정도로 판단한다. 첫 번째는 시장 내 추격자의 위치에 안주하여, 시장 선도자들의 기술을 답습하고 단기간의 기술혁신만을 추구하는 문화를 꼽을 수 있겠다. 자동차 인간공학 및 사용자 경험에 대한 연구자로서, 연구·개발(R&D) 관계자들과 미래 혁신 방향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들은 3년 이상의 개발 기간이 소요되는 중장기적 계획은 대부분 고려하지 않았고, 언제나 유럽 선도 기업들이 기술적 발판을 구축한 영역에만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기업 문화로는 파격적인 기술 혁신을 선도할 수 없으며, 과거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형태의 혁신에 안주하게 되어 결국 시장에서의 위치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두 번째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도취되어 시장과 괴리된 자동차 개발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국내 자동차 회사의 눈부신 성장을 이끌었던 핵심 경쟁력인 저렴한 가격 대비 우수한 품질을 통한 판매 전략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차량의 기술적 성능 및 관련 기술 개발에만 집착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지상주의적 문화의 팽배는 국내 개발 센터의 초청 간담회 자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시장의 변화나 자동차에 대한 운전자의 가치 변화 등 고객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뒷전이었다.
자동차 산업이 처한 문화적, 사회적 환경이 짧은 시간 내에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지적한 두 가지의 근본 원인들이 고쳐지지 않고 지금의 시장 상황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확인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로, 2년여 전 중국 칭화대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중국 내 도시화 전개 양상, 그에 따른 농민공들의 재이동, 소비 행태 변화 등이 급격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직후 국내 자동차 그룹의 주선으로 중국 내 차량 생산 기지 탐방 및 현지 주재원들과의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이러한 이슈에 대해 논의할 기회가 있었지만 필자는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았다. 주재원들의 답변 태도는 중국 내 변화 이슈들에 대해 무감각했으며, 과거의 성공방식에 지나치게 도취되어 있었다. 따라서 시장의 변화 흐름이 신차개발과정에 제대로 전달되었을 리 만무하며, 그것은 현재의 상황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객이 기대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제품만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혁신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와 시장지향적인 개발 프로세스의 정착이 최우선 과제이다. 고임금과 노조라는 부차적인 이야기는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를 달성한 후에 다루어야 할 문제이다.
<지용구 연세대 교수 정보산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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