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LG화학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책위’)가 관심의 대상이 됐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과 다른 의사결정을 한 것이다. 다른 때와 달리 많은 소수 주주들이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지만 국민연금이 소수 투자자들과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는다고 할 수는 없다.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장기적 투자를 목표로 하기에, 단기 투자 위주의 소수 투자자들과는 다르다.
국민연금의 수책위는 지역가입자, 근로자, 사용자 측에서 각각 3인씩 구성돼 국민연금 납부자를 대표한다. 정부 인사는 개입할 수 없다. 의사 결정의 기준은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익에 부합하느냐와 장기적으로 투자기업의 성장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뿐이다. 물론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용자, 노동자, 자영업자에 따라 각각 입장과 판단이 다를 수도 있다. 안건 자체가 기금운용본부에서 결정하기 곤란한 사항들이어서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회의 때마다 격렬한 논쟁이 있고 회의록도 책 한권 두께다.
하지만 어렵게 결정된 의결 사항도 실제 회사의 의지와 다르게 관철된 적은 거의 없다. 이번 LG화학 건도 그렇다. 기관투자가가 1대 혹은 2대 주주라 하더라도 여전히 기업을 소유하는 재벌 구조에서는 소수 주주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대로 반영되지 않을 것이 명백하다고 해서 기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해 찬성하는 것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에 위배된다. 또한 주주가치 제고와 장기적인 기업의 성장에 국민연금이 함께하자는 원칙을 양보할 수도 없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자본주의의 가장 발달한 형태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은 이미 논쟁이 끝난 사항이다. 아직까지 몇몇 기업들의 경우 주식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최고경영자만을 위한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 주주로서의 책무를 수행하는 수책위에 대한 공격과 비난은 오히려 자본주의에 가장 해악이 되는 기업 전체주의로 인식될 수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원종현 기금운용위원회 투자정책전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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