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론스타 사건에 대한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센터 사무국의 답신을 받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론스타가 대한민국에 5조원대 배상을 청구한 국제분쟁에서, 직접 변론을 하겠다고 신청한 바 있다. 사무국은 민변의 신청서를 세 명의 국제분쟁판정부에 전달했다고 답을 했다. 민변의 신청은 국제중재규정에서 보장한 것이다.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동의가 있으면, 민변은 론스타 판정부에 변론을 직접 할 수 있게 된다.
민변은 왜 론스타 국제배상분쟁에 직접 변론을 하려고 하는가? 그 까닭은 론스타 사건에서 한국 정부가 패소해 1조원에 달하는 돈을 물어내야 할 수도 있다는 보도 때문이다. 론스타 국제배상분쟁 사건은 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됐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을 2조1570억원에 사서 하나금융에 3조9000억원에 팔았다. 그렇지만 론스타는 자신이 더 비싸게 지분을 팔 기회를 한국정부 때문에 놓쳤다면서 국제배상분쟁권(ISD)을 행사했다. 47억달러, 5조원이 넘는 돈을 배상하라고 국제분쟁으로 한국 정부를 끌고 갔다.
론스타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 워싱턴과 네덜란드에서 세 차례 변론을 진행했다. 변론 종결 선언을 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데도 한국이 패소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패소 금액이 1조원이라는 등 구체적인 액수까지 나온다. 심지어 ‘정부 관계자’가 그렇게 말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나는 분노한다. 누가 론스타 사건을 담당하는 정부 관계자인지 모르겠지만 비겁하다. 18년 변호사 생활을 했다. 그런데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패소 운운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하물며 대한민국 정부가 당사자이다. 패소 운운 금액이 자그마치 1조원이다. 만일 지금의 보도처럼 한국이 패소하면 그 돈은 국가 예산에서 지출되어야 한다. 국민의 혈세로 1조원을 론스타에 내야 한다.
1조원은 모든 국민이 약 2만원을 내야 하는 돈이다. 65세 이상의 어르신 전부에게 15만원씩 드릴 수 있는 돈이다. 이런 혈세를 론스타에 주어야 할지 모른다고 벌써부터 말하는 정부 관계자는 비겁하다. 그래서 화가 난다.
민변이 론스타 사건 판정부에 직접 변론을 하려고 하는 핵심 쟁점은 론스타가 국제배상분쟁을 제출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을 취득할 당시, 금융과 산업을 분리하는 금산분리 원칙이 있었다. 금융자본만이 외환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었다.
민변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처음부터 없었다고 평가한다. 만일 론스타가 ‘케이시 홀딩스’ ‘가슈 엔터프라이즈’ ‘유에스 레스토랑 프로퍼티스’ 같은 비금융 특별관계인을 금융감독당국에 제대로 보고했다면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국제배상분쟁의 판례를 보면, 만일 외국인 투자자가 처음 투자 인허가를 받을 때, 정부에 충실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허가를 받은 경우에는 국제배상분쟁을 청구할 자격이 없어 패소한다.(대표적인 판례가 2003년 프라포트 대 필리핀 사건이다) 이처럼 론스타의 투자자 자격 문제는 승소와 패소를 가를 만큼 중요하다.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민변이 끊임없이 론스타 사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요청했던 것도 이 핵심 쟁점을 판정부가 충분히 조사하고 심리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난 정부들은 한사코 민변의 참여를 가로막았다. 방청 신청도 거부하고, 의견서 제출도 거부했다.
달라져야 한다. 민변이 직접 변론할 수 있도록 정부가 민변의 신청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판정부에 표시하기를 희망한다.
나아가 외국인 ISD라는 무기를 외국인에게 주는 모순을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고백했듯이, 제주 영리투자병원을 허가한 배경에는 ISD가 도사리고 있다. 잘못을 바로잡는 출발은 한·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있는 ISD를 폐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미 변호사 비용만으로 400억원의 혈세를 쓴 론스타 사건의 쓰린 교훈이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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