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우리가 금융사에 검찰 자료를 넘겨서 문제가 생긴 게 뭐가 있습니까. 언론은 조사가 느리다고 몰아붙이지, 금융사는 자체 조사를 못해내지….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최근 만난 금융감독원 임직원들의 말은 다 비슷했다. 금감원이 KB국민·NH농협·롯데 등 카드사를 포함한 20여개 금융사에 1억건이 넘는 검찰 압수자료를 제공한 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란 경향신문 보도를 전후해서다.
금감원이 처했던 급박한 상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안 사고는 이런 안이한 의식 탓에 터진다. 카드 3사만 해도 철석같이 믿었던 신용정보 전문업체 코리아크레딧뷰로 파견 직원에게 당했다. 더 빨리, 더 편하게 보안시스템 구축 용역을 마치려는 욕심에 경계심 없이 일을 처리하다 사고를 낸 것이다.
금감원은 일부 금융사로부터 2차 유출을 막겠다는 취지의 각서를 받고 검찰 자료를 넘겨줬다. 이 과정에서 금융사는 다른 회사의 고객정보까지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은 금융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다. 혹여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은 각서만으로 막아낼 수 없다.
개인정보유출 관계기관 합동 브리핑 (출처 :경향DB)
금감원은 처음엔 파일을 통째로 넘기지 않고 고객식별번호만 제공했다. 이후 금융사 유출 파일이 확실시되자 자료를 넘겼다고 설명했다. 고객식별번호를 대조해 카드사 고객정보가 맞다고 확인했다면 이후 분석 작업은 금감원이 해야 할 임무였다. 그런데도 굳이 파일을 금융사에 넘긴 것은, 민간업체에 ‘알아서 정리해오라’는 식의 행정편의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금융사에 ‘정보보호 인식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당국은 10일 ‘개인정보 유출 종합대책’에서 “금융기관의 편의성과 효율성이 아닌, 금융소비자 관점에서 고객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작 당국은 편의와 효율을 위해 법까지 어기면서 민간 금융사만 다그치고 있으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홍재원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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