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후유증과 조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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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칼럼, 기자메모

대박 후유증과 조급증

by eKHonomy 2018. 2. 1.

오랜만의 의기투합. ‘한번 보자’ 해서 급하게 만들어진 술자리에서 예상 질문이 적중했다. “주식 뭐 사야 되냐. 코스닥 바이오 지금 들어가면 늦은 거야? 몇 개 추천 좀 해줘봐.”

 

업황이 어쩌고저쩌고. 정책이 이러쿵저러쿵. 준비한 답안을 읊어주고 “개별 주식은 난들 알 재간이 없으니 알아서 하라” 했더니, 금세 “이 사쿠라 경제부 기자”라며 장난 섞인 조롱이 날아든다.

 

이재(理財)에 밝은 이 친구는 지난해 말 가상통화 시장에 뛰어들어, 본인 말로는 “소소하게 돈 천 정도 벌었다”고 했다. 앞서 주식 투자로도 “재미 좀 봤다”는 그는 “시드 머니를 좀 키워서 주식으로 올해 승부를 한번 봐야겠다”고 했다. 정부가 나서서 (자본시장) 활성화 대책을 내놨으니 단기적으로 반응이 한번은 확 올 것이라는 애매한 근거가 전부였지만, “살살 봐가면서 하라”는 조언 외에 딱히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연말부터 새해 벽두까지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들이 여기저기서 불끈대고 있다. 재건축 바람을 타고 강남 부동산이 불끈하더니, 비트코인을 필두로 가상통화 시장이 또 한번 불끈했다.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정부가 모든 조치를 총동원키로 했다’는 기사로 신문들이 도배되다시피 했지만, 엉뚱하게 그 밑에 달린 ‘자고 나니 억이 올랐더라’ 따위의 다른 사람 돈 번 이야기에 더 눈길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가상통화도 마찬가지다. ‘실체가 없는’ ‘법정화폐가 아닌’ ‘도박’ ‘폐쇄’ ‘폰지 사기’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무수한 부정의 언급 속에서도, 아무개가 가상통화로 몇 억원을 벌었다거나, 지인의 지인이 몇 십억원을 벌어 이민을 갔다는 이야기가 더 솔깃했다.

얼마 전 만난 한 증권사 관계자는 가상통화를 언급하며 “이 바닥에 있으면 평생 3번은 큰돈 벌 기회가 온다는데 지난해 마지막 기회까지 놓친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남들 다 돈 벌고 나갔는데, 자신만 못 벌었다는 아쉬움이 짙었다.

 

그렇게 신문에서, 방송에서, 옆자리 동료에게서, 단체 카톡방에서 ‘억, 억 거리는 대박 이야기’가 경계심을 살살 녹여가다 보니, 너도나도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지금이 아니면 부자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묘한 분위기가 감돌며, 사람들의 조바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금리 인상기를 맞아 최고금리를 높인 예·적금 신상품이 속속 출시되고 있지만, 최고금리 4%는 이미 시시해져버린 느낌이다.

 

부동산은 ‘투기’로, 가상통화는 ‘사기’로 진출입을 꽁꽁 막아둬서일까. 불끈대는 욕망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주식시장에 돈을 밀어넣고 있다. 주식 투자를 위한 대기성 자금인 고객예탁금은 1월 사상 처음으로 3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말 24조원대에 불과했던 고객예탁금은 한 달 만에 무려 6조원이나 늘어났다. 개인투자자들이 빚을 내 주식을 산 신용융자잔액은 사상 처음 11조원을 넘어섰다. 주식거래활동계좌 수도 2508만개로 사상 최다다. 1월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의 거래대금 비중은 전체의 71.2%, 코스닥시장만 놓고 보면 이 비중은 무려 87.1%에 이른다.

 

문득 너무 빨리, 또 급하게 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칠게 말해 비슷한 풍경을 지난해 가상통화 시장에서 본 적 있다. 혁신성장 생태계에 돈을 대는 자본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하는 정부로서는 달갑지 않겠지만, 정부가 가상통화 대란에 임하며 했던 말을 한번 써먹어야겠다. 

 

“투자 손실의 책임은 모두 투자자 본인에게 있고, 정부는 투자 손실을 구제해주지 않는다.”

 

급히 먹는 떡이 체한다고 했다. 갑자기 ‘빨리 부자가 돼야지’ 하는 조급증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먼저 그 조급증이 어디서 왔는지 살피고 투자계획을 천천히 세워보는 건 어떨까 제안해본다.

 

<경제부 ㅣ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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