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세법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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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마감 후]세법 파동

by eKHonomy 2013. 8. 30.

요즘 기획재정부 분위기는 최악이다. 일벌레로 유명한 모 과장은 아침 출근이 싫다고 했다. 한 사무관은 TV 뉴스에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나오자 고개를 돌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실·국장들도 위축돼 있고, 조바심을 낸다. 시쳇말로 ‘멘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 공무원들이 이렇게 된 것은 세법 개정안 파동 때문이다.


세법 파동은 한편의 블랙 코미디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겁했다. 그는 기재부로부터 중산층의 세 부담을 늘리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에 관해 사전에 충분히 보고받았다. 그래놓고도 세법 개정안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여당 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세법 개정안 마련 과정에서 기재부는 새누리당과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쳤다. 그때는 별말이 없다가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하자 “기재부의 정무적 판단이 부족했다”고 뒤통수를 쳤다.


현오석 부총리는 경제수장으로서 제 역할을 못했다. 최소한의 자존심도 못 지켰다.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가 떨어지자 반나절 만에 직장인의 세금 부담 증가 상한선을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높였다. 공동 책임을 추궁해도 시원찮을 여당 의원들 앞에서는 고개를 숙였다. 세제실 공무원 130여명이 6개월 넘게 밤샘작업을 해서 마련한 박근혜 정부 첫해 세법 개정안은 그렇게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의 시도는 일단 성공을 거뒀다. 만만한 월급쟁이 지갑만 턴다는 비판 여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기재부는 희생양이 돼 고립무원 상태에서 십자포화를 맞았다. 현 부총리도 많은 것을 잃었다. 그의 리더십은 만신창이가 됐다. 한 과장은 “무능한 직장 상사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과장은 “이전 박재완 장관 같으면 절대 이렇게 (기재부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개숙인 현오석 (경향DB)


조직에 대한 기재부 공무원들의 헌신은 남다르다. 한 달 전 그들은 벼랑끝까지 몰린 현 부총리를 구해냈다. 지난달 7일 박 대통령은 공개 석상에서 현 부총리를 질책했다. 주택 취득세율 인하 문제를 놓고 안전행정부와 국토교통부 간에 이견이 나오고 있는데 현 부총리가 경제사령탑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제민주화에 불만을 가진 재계도 현 부총리를 흔들었다. 기재부 직원들은 혼신을 다해 부총리를 보좌했다. 실·국장은 물론 과장과 신임 사무관까지 똘똘 뭉쳤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의 현 부총리 활동을 부각시켰다. 현 부총리가 1박2일 일정으로 각 부처 차관과 기자 수십명을 대동하고 새만금·전주·광양·창원·울산 지역을 순회하는 이벤트도 만들었다. 활짝 웃으며 투자자를 업어주는 현 부총리의 사진이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나 일주일 뒤 현 부총리는 세법 파동으로 다시 추락했고, 이번엔 부하들의 신임까지 잃었다.


이번 세법 개정안은 국민 전체가 복지와 증세 문제를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증세 없는 복지’ 발언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는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천막을 치고 장외투쟁 중인 야당을 국회로 끌어들이는 재료로도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론의 장이 펼쳐지기도 전에 졸속으로 세법 개정안이 수정되면서 모든 기회가 사라졌다.


세법 개정안 수정으로 당초 계획보다 줄어드는 4400억원의 세금을 어디서 마련할지도 아득하다. 이미 상반기에만 10조원의 세수 결손이 났다. 28일 주택 취득세율 인하 결정으로 연간 2조4000억원의 지방세수 결손이 추가로 생겼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하시겠죠. 필요하면 부총리 시킬 테고. 우리가 뭐 고민할 필요 있겠습니까.” 기재부 공무원들은 의욕을 상실했다. 현오석 부총리는 능력의 밑천을 드러냈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가득하다. 대통령 취임 후 가장 중요하다는 6개월의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



오창민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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