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공정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이타적인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사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이타적인 사람은 남에게 혜택을 주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손해가 되는 행동을 한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이타적인 사람은 불안정하다. 자신보다 불쌍한 사람에게 음식을 건네느라 배를 주리고, 경제적으로 궁핍하다. 대를 잇지 못하거나 자녀 양육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일신의 영달을 꾀하지 않고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단적인 예다.
그에 비하면 이기적인 사람은 진화론적으로 안정적이다. 자신밖에 모르기 때문에 생존에 유리하고 명(命)도 길다. 자기 몫은 당연히 챙기고, 이타적인 사람 몫까지 가져오기 때문에 평균보다 더 많은 이득을 얻는다.
약육강식과 승자독식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득세한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시되고, 성공은 무조건 미화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둥, 이기심은 생명체가 갖고 있는 본능이라는 둥,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둥, 이기심을 합리화하고 떠받드는 작업도 이뤄진다. 이런 사회에서는 이기적인 사람만 자꾸 늘어나고, 이타적인 사람은 점점 도태된다.
기업 생태계도 비슷하다. 개인의 이익 추구만을 중시하는 경제 체제에서는 이기적인 기업이 이득을 얻게 돼 있다. 환경을 파괴하고, 중소기업의 일감을 뺏고, 탈세를 하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들이 돈을 더 많이 벌고 영향력이 점점 더 세진다.
그러나 이기적인 사람들로 이뤄진 사회는 위험하다.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미국의 생태학자 개럿 하딘은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라는 개념으로 이기심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기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공유지에 너도나도 소를 방목하면 공유지는 황폐해져 결국 모두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기업가의 이윤 추구 욕구를 동력 삼아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의 부(富)가 이기심 많은 소수에 몰리고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체제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이기적인 사람들과 이타적인 사람들이 지난 4월16일 오전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는 세월호에 함께 타고 있었다. 선장은 자신이 탈출하면 남은 승객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충분히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 한 몸을 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항해사와 기관장 등 선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선실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승객의 생사보다 과적 등 규정 위반으로 문책받을 일을 더 걱정했다. 일부는 동료가 다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도 그냥 탈출했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 기소 혐의 (출처: 경향DB)
반면 같은 시각 세월호 말단 승무원 박지영씨는 혼란에 빠진 승객을 안심시켜 구조선에 오를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까지 벗어서 다른 사람에게 건넸다. 또 다른 승무원 정현선씨와 아르바이트생 김기웅씨는 탈출하지 못한 승객을 찾아 사지(死地)로 다시 들어갔다. 이기적인 선장과 선원들은 옷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해양경찰의 구명정에 맨 먼저 구조됐지만,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한 박씨와 정씨, 김씨는 목숨을 잃었다. 한배에 타고 있었지만 이기적인 사람과 이타적인 사람의 운명은 이처럼 달랐다.
정부가 박지영·정현선·김기웅 등 세월호 의인 3명을 의사자(義死者)로 지정했다. 의사자 유족에게는 법에서 정한 보상금(2억290만원) 등이 지급된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타적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전반적인 사회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경찰도 공무원도 믿을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은 이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오창민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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