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민 경제부 차장
짜장면은 맛있다. 특히 배고플 때 먹는 짜장면은 맛이 기막히다. 하지만 한 그릇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해 하나를 더 시키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첫 번째 것에 비해 확실히 감동이 덜하다. 세 그릇째라면 맛을 거의 느끼기 어렵다. 짜장면은 이처럼 첫 번째가 가장 맛이 좋고 두 번째, 세 번째로 갈수록 맛이 떨어진다. 만약 네 그릇째 먹는다면 배가 꽉 차 더 이상 만족감도 없고 오히려 고통이 될 것이다. 경제학의 유명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때문이다. 이 법칙은 독일 경제학자 허만 고센(H H Gossen)에 의해 정리돼 고센의 제1법칙이라고도 불린다. 인간 욕망을 설명하기에 적합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서도 유용하다.
첫사랑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처음 사귄 이성 친구와 손을 잡았던 순간은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는다. 영화 <건축학 개론>은 이런 첫사랑의 추억을 그려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러나 사랑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감동은 줄어든다. 만약 첫 번째부터 열 번째 이성 친구에 이르기까지 모두 똑같은 사랑의 감정을 가졌다면 그는 필시 타고난 바람둥이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소득 분배에 적용해볼 수는 없을까.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을 주창한 공리주의자들이 시도했다. 예컨대 100억원을 가진 부자와 전 재산이 100만원인 가난한 사람이 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100만원의 공돈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부자는 100만원이 추가로 생긴다 해도 별로 즐거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겨우 재산이 1만분의 1 늘었을 뿐이다. 부자는 자기가 갖고 있는 돈에서 100만원쯤 없어진다고 해도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처지가 다르다. 100만원은 오뉴월 가뭄에 단비와도 같다. 재산이 일시에 2배로 늘었다. 만약 가난한 사람이 갖고 있던 100만원을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면 곧바로 파산이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추가적인 만족 한 단위를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반면 가난한 사람은 조금만 돈이 생겨도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정부가 적극 소득 재분배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적 근거를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파이’를 나누면 사회 전체의 만족감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는 기분이 약간 나쁠 수 있지만 부자의 기분 나쁜 것을 모두 합친 것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만족감이 훨씬 크다. 대표적인 소득 재분배 정책은 복지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기로 한 무상보육이나 대학 반값등록금, 월 20만원의 기초연금, 암 등 4대 중증질환 국가 부담 정책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미 자기 돈으로 자식들 가르치고,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며, 의료비가 전액 보장되는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은 약간 손해지만 서민과 중산층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고마운 정책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통해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이야기한 것은 파이를 나누겠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경향신문DB)
다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으로 돌아가 보자. 컴퓨터 게임은 처음 30분이 재밌다. 맥주도 첫 잔이 제일 시원하고 맛있다. 게임을 많이 하면 할수록, 맥주를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효용은 떨어진다. 하지만 게임을 밤새도록 하고 다음날 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날 과음으로 힘들어 하면서도 술을 또 마신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경우다. 주변에서는 이들을 게임중독자, 알코올중독자라고 부른다.
이미 돈을 많이 벌어 재산이 수천억, 수조원인 거부가 돈 몇 푼 더 벌기 위해 골목상권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비정규직을 고용한다. 국민 의무인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불법 회계를 일삼고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자식에게 돈을 편법으로 상속한다. 정권 교체기의 어수선한 틈을 타서 독과점으로 생산하고 있는 물건의 가격을 올린다. 이 역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돈에 중독됐다고 표현하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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