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꿈나무들에게 사회적 상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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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미래 꿈나무들에게 사회적 상속을!

by eKHonomy 2021. 5. 6.

대한민국의 자산불평등과 이로 인한 기회불평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나타난 가구 순자산의 10분위별 점유율을 보면 상위 10%가 전체순자산의 43.7%를 점유하는 반면 하위 10%는 점유율이 -0.3%이다. 하위 10%는 자산보다 부채가 많다는 말이다. 상위 30%가 74.4%를 점유하고 있는 반면 하위 50%는 10.1%를 점유할 뿐이다. 내 추계에 의하면 피케티의 베타라고 불리는 국부를 기준으로 한 자산-소득 비율을 보면 1966년 443%이던 것이 꾸준히 상승하여 2019년에는 851%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한국 사회에서는 자산불평등보다 소득불평등이 훨씬 더 중요하다면서 피케티가 틀렸다고 단언했지만 내가 보기에 정작 틀린 것은 피케티가 아니라 장하성 실장이다. 어쩌면 많은 청년들을 졸지에 벼락거지로 만들어버린 것도 이러한 초기의 잘못된 정책판단이 불러온 예견된 참사일지도 모른다. 자산불평등의 시정이 소득불평등의 시정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라는 것은 일반상식이다.

 

취업은 어려워지고 주택가격이 치솟으며 양육비와 교육비 부담은 점점 더 커지는 상황에서 금수저로 태어난 아이들은 막대한 인적·물적 자산을 세습하지만 흙수저 청년들은 희망을 잃고 결혼과 출산을 기피한다. 2012년 47만명이던 신생아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더니 2020년에는 27만2000명이 되고 올해는 25만명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2020년 출산율은 0.84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가난한 청년들의 결혼기피가 특히 심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대부분은 늦깎이 결혼이다. 평균초산연령도 31세를 넘어 OECD 국가들 중 최고이다. 고령임신이 되면 임산부뿐 아니라 태아도 여러 건강상의 문제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수행한 ‘2020 청소년 종합실태조사’에서 한국청소년 10명 중 6명이 결혼과 출산이 필요하지 않다고 대답했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아프니까 청년이다’라고 하기에는 청년들이 너무 아프다. 자산불평등과 부의 대물림을 완화하고 청년들의 출발선을 조금이나마 고르게 만들어주기 위해 모든 신생아들에게 사회가 최소한의 상속분을 마련해 주자. 예컨대 출생시점부터 20년 정도 적립하여 성인이 되었을 때 교육, 주택마련, 혁신적 창업 등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의미한 액수의 재원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의 역작 <피그말리온>에 나오는 앨프리드 둘리툴은 “너무 적은 돈은 헛되이 쓰기 더 쉽지만 큰 액수는 사람을 절제하게 만들 것”이라고 한 바 있는데 나는 둘리툴이 맞는 말을 했다고 본다.

 

사회가 모든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최소한의 상속분을 만들어주자는 주장은 국내외 여러 학자들이 제기한 바 있고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이 논의를 구체화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상속분의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이 활용될 수 있지만 나는 무엇보다 일차적으로 상속증여세를 목적세로 전환하여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작년에 상속증여세수는 약 10조원이었다. 그런데 현행 상속증여세는 부유층이 받는 상속분을 약간 감소시키는 역할만 할 뿐, 가난한 아이들에게 상속분을 만들어주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하고 있다. 상속증여세를 목적세로 만들면 상속증여세 세수의 전부 혹은 일부는 사회적 상속분을 조성하는 데에만 사용된다. 이렇게 되면 부의 재분배가 조세와 지출 양쪽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재분배 효과가 현저히 커진다. 또 상속증여세에 대한 조세저항도 쉽게 무력화할 수 있고 상속증여세를 올리기도 쉽다. 목적세는 일반적으로 사용용도가 제한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고 간주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다르다. 자산과 같은 불평등이 극심한 세목의 경우에는 재분배 효과가 탁월하다.

 

사회적 상속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은 종합부동산세수의 일부 혹은 전부를 신생아들의 사회적 상속분 형성 및 무주택 청년들의 주거복지 사업에 사용하는 것이다. 상층 부동산 자산가로부터 얻은 세수를 모두 지방으로 교부하는 대신 그 일부 혹은 전부를 신생아들의 사회적 상속분 형성 및 무주택 청년들의 주거복지 개선 사업에 적극적으로 쓰자는 것이다.

 

사회적 상속을 받은 미래의 꿈나무들은 바르게 성장하여 혁신을 주도하고 소득을 창출할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회로부터 받은 상속분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연대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다. 공동체가 회복될 것이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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