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부동산 거품이 붕괴된 것은 1990년 말이다. 아파트 가격은 급락했다. 마이너스 성장률에 경기는 침체에 빠졌다. 아우성이 커지자 정부가 초저금리를 내세워 부양책을 내놨다. 온기가 돌면서 도쿄 일부 재개발지역 아파트값이 활기를 띠었다. 이곳저곳에서 매입적기라는 얘기가 들렸다. 은행은 집값의 절반 이상을 빌려줬다. 금리 3%대에 30년 장기 원리금 상환 구조였다. 30~40대들이 덤벼들었다. 비싼 월세를 주느니 사자는 분위기였다. 자산 가치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반대로 움직였다. 반짝이던 경기는 다시 추락했다. 정부는 경기부양으로 적자가 심해지자 세금을 올렸다. 소비가 위축되면서 아파트값이 추가 하락했다. 기업이 힘들어지면서 퇴직자들이 넘쳐났다. 재취업도 어려웠다. 집을 팔려해도 살 사람이 없었다. 상환 능력 상실, 결과는 파산 도미노였다.
한국 사회에 가계부채 시한폭탄이 재깍거리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으로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집값이 하락조짐을 보이면서 빚으로 쌓아올린 부동산 거품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말만 믿고 빚내 집 샀던 시민들 사이에서는 일본식 공포감이 어른거린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지금의 거품은 ‘최경환표 정책’의 결과다. 2014년 7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취임한 그는 경제를 구한다며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방법은 자산시장 가격을 올리는 것이었다. 자산가격이 늘면 소비 증가로 이어져 경제에 온기가 돌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주택담보대출비율 등을 조정하고, 분양가상한제를 풀었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낮췄다. 신규분양과 재건축이 늘면서 거래상황이 좋아졌지만 부작용도 커졌다. 분기당 가계대출액이 30조원씩 늘었다. 전 정권의 5배 수준이었다. 빚을 갚느라 가계는 허덕였다. 지갑은 닫혔고, 내수는 나아지지 않았다. 기업매출도 뒷걸음쳤다. 성장률은 2%대로 주저앉았다. 지난해 1월 등판한 유일호 경제팀은 가계부채 경고에도 최경환표 정책을 이어받았다. 박근혜 정부 기간 중 가계빚은 300조원 이상 불어나면서 1300조원을 넘어섰다.
부동산으로 누가 재미를 봤을까. 우선 돈푼깨나 있다는 강남 부자들이다. 재력과 정보력으로 무장한 이들은 전국의 부동산을 헤집고 다니면서 오를 만한 곳을 미리 사둔다. 침체 얘기가 나오기 전에 가장 먼저 손털고 나간 것도 이들이다. 두번째 집단은 떴다방이다. 고가의 분양가에도 프리미엄이 붙는 것은 이들이 활개친 탓이 크다. ‘당첨되면 연락주세요’라며 명함을 건네며 수수료를 챙긴다. 청약통장을 사고파는 기업형 떴다방은 더 큰돈을 번다.
부동산 부양으로 곳간이 가장 두둑해진 곳은 건설사들이다. 해외플랜트 적자로 기진맥진했던 건설사들은 지난 2년간 역대 최대 규모의 분양물량을 쏟아내며 톡톡히 수익을 올렸다. 현대, 대우, GS 등 대형건설사들은 해외사업 손실을 아파트에서 번 돈으로 메우고도 영업흑자를 기록했다. 금융기관들의 재미도 컸다. 경기침체에도 은행들이 조단위의 수익을 올린 것은 가계대출 증가에 따라 이자이득이 늘어난 영향이 절대적이다. 기준금리 1.25%에도 주택대출 금리는 4%대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 돈벌이가 아닐 수 없다. 금융당국이 은행권 대출을 죄자 제2금융권이 풍선효과를 누리고 있다.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것은 정치세력이다. 이들에게 경기 부양은 표로, 재선의 보증수표이다. 그 표는 집값을 떠받쳐야 사는 기득권에서 나온다. 수혜자들로부터 정치자금을 제공받거나 은퇴 뒤 한자리쯤 챙기는 것은 덤이다. 관료들은 개발시대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건설산업은 연관효과가 컸다. 사회간접자본이나 주택도 모자랐다. 산업구조가 바뀐 지금은 달라야 마땅하지만 여전히 삽질해 성장하던 시대에 머물러 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죽어나는 것은 가진 것 없는 시민들이다. 기득권 세력이 부동산 부양을 외치는 사이 하우스푸어는 렌트푸어가 됐다. ‘빚내 집 사라’는 ‘빚내 월세 살라’는 시대로 바뀌었다. 지난해 11월 뒤늦게 내놓은 규제책으로 부동산이 꺾일 조짐이 보이자 유일호 경제팀이 다시 부양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기침체를 방관할 수 없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이 말이 폭탄돌리기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고, 믿을 건 부동산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희망 없는 사회이다. 곪은 부분이 있으면 도려내야 한다. 이마저 아프다고 놔두면 죽는다. 폭탄돌리기는 멈춰져야 한다.
박용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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