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한 발 멀리서’]어느 날 ‘가난한 왕’의 고궁을 나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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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박재현의 ‘한 발 멀리서’]어느 날 ‘가난한 왕’의 고궁을 나오면서

by eKHonomy 2018. 1. 17.

최저임금 인상 공방이 치열하던 지난해 6월27일 필자는 기자칼럼에서 ‘가장 가난한 왕과 낙하산’이라는 제목으로 임금 불평등에 대한 단상을 적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왕은 ‘최저임금’이라는 아재 개그를 들었을 때, 부인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제대로 쉴 시간과 공간이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식당 노동자와 눈을 비비며 물품을 정리하다 새벽을 맞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 그들이 받는 임금으로는 뛰는 집세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하는 일에 비해 받는 돈이 훨씬 많은 금융권의 ‘꽃보직’들은 낙하산들의 단골 투하 장소가 되고 있다. 그래서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낙하산 자리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난한 이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 임금 격차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희망했다.

 

1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본관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 등을 이유로 청소노동자를 초단기 파트타임 노동자로 대체하는 구조조정 중단을 학교 측에 촉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지난 1일부터 최저임금이 전년보다 16.4% 인상된 시간당 7530원이 됐다. 1988년 도입된 지 30년 만에 최저임금이 7000원선을 넘었다. 지난해보다 월 20만원가량 수입이 늘어난다고 궁핍한 삶이 곧바로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희망의 빛이 더 환해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 적용된 지 보름이 조금 지난 최저임금에 대한 친재벌 전문가, 시장맹신주의 경제학자, 보수 언론들의 우려가 어느 때보다 홍수를 이룬다.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들이 아르바이트를 줄이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건비 상승에 따른 물가대란도 걱정한다. 인상안이 적용되기도 전인 지난달 취업자 증가수가 줄어든 것도 최저임금 때문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저주를 퍼붓고 있다.


물론 사상 최대로 오른 최저임금 정책이 아무 일도 없이 기대효과만 샘솟을 수 없다. 만일 그랬다면 지금껏 인상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순기능만 있는 정책 또한 없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상승이 올해 소득 3만달러를 돌파하리라는 우리 경제가 감내하지 못할 수준인가. 단언컨대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실질경제성장률은 3%에 이르고, 수출 호조가 이어지며 민간소비가 늘어나는 ‘쌍끌이’로 성장 모멘텀이 유지될 것이란 정부의 기대가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최저임금을 올리지 못할 정도로 경제상황이 위기이거나 극심한 불경기는 아니다.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카드 수수료 인하에 반대했고, 골목 상권을 지키기 위한 대형마트 의무 휴업도 무력화시키려던 그들이 얘기하는 ‘최저임금의 역효과’라는 것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최저임금이 10% 이상 올랐던 2002년과 2006년 물가상승률은 오히려 둔화됐다. 고용률은 2002년 60%로 전년보다 1%포인트 올랐다. 만약 올해 물가가 오른다면 국제유가 등 대외변수 때문이거나 치솟는 부동산 가격 때문일 것이다. 고용이 줄어든다면 그동안 저금리로 버텼던 좀비 기업들이 금리 상승으로 도산하기 때문이지 최저임금이 올라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최저임금 인상은 ‘촛불 민심’의 반영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유승민·심상정 후보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홍준표·안철수 후보가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다. 보수정당 후보까지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한 것은 그것이 시대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재벌에만 쏠렸던 성장의 과실이 공정하게 분배되고, 경제가 성장한 만큼 삶의 수준을 올리는 것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이 고통스러운 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이 없을 수 없다. 매출도 제자리고 임대료와 재료비가 오르는 상황에서 인건비가 늘어나게 되면 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최저임금을 옥죄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을’이 ‘좀 더 약한 을’을 발판으로 생존하는 사회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는 일이다. 먼저 바꿀 것은 임대료와 프랜차이즈 본사 납입금이 과도한 상황에서 손댈 것이라고는 인건비밖에 없는 현실이다. 자영업자·프랜차이즈 가맹점주·중소상공인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부담을 그야말로 ‘하청 구조’의 최고 정점부터 나눠 가져야 한다. 인건비와 재료비가 올라도 대기업에 납품단가를 올려달라고 얘기할 수 없는 재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다. 점차 기득권층화하고 있는 대기업 노조도 그 예외일 수 없다.


영화 <1987>이 바라던 ‘그날’은 왔을지 몰라도 시인 김수영이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발표한 1965년에 바라던 그날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지금은 1060원 오른 최저임금에 반항할 게 아니다. 불로소득을 제대로 환수하지 못한 사회 구조와 그에 충실했던 관료·지식인들의 무능과 허위의식에 분노하는 게 옹졸함을 피하는 방법이다.


<박재현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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